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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7

‘미친’ 사랑과 아슬아슬한 지리학

릴케는 1875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시인이다. 그는 1895년에 48편의 시를 모아 시집을 내고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같은 해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양친의 희망에 따라 프라하 대학에서 철학, 문학, 예술사 외에 법학을 공부하였다. 프라하도 아름다운 대학 도시지만 그는 1896년 가을학기에 새로운 분위기를 지닌 뮌헨대학으로 옮겼다. 세기말의 뮌헨은 독일 바이에른 주의 수도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예술 활동의 중심지였다.   릴케는 대학 초년생에 적합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1897년 5월에 브리넨스트라세 48번지로 이사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릴케가 이사한 거리는 예술가와 작가 모임이 교류하는 셀링스트라세 83-89번지와 가깝다. 살로메가 1897년 4월 말에 ..

에세이 2024.09.12

행복은 가불하고 이론은 차압당했다.

아침에 전철을 타면 들었던 멘트가 있다. “행복하세요!”. 좀 불쾌했다. 듣는 자에게 필요 이상의 행복의 조건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빈부격차, 인구 절벽, 기후변화, 세대 갈등, 등의 분야에서 문제 해법이 제시되어야 그 말의 의미가 다가올 수 있기다. 다만 모르고도 아는 척하고 떠벌이는 진중권 같은 자도 있다. 그의 멘트를 받아 미디어로 돌리고 조림하는 꾼들의 놀이도 역겹다. 나는 지하철에서 나오는 멘트를 듣기 싫어서 차라리 걸어서 이동했다. 하루 만 보를 정하고 걸으니 도보가 편했다. 그래서 도보와 지하철을 반반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개찰구 앞에는 3음절의 삑 소리만 들리고 행복을 전하는 메시지가 사라졌다. 삑 소리로 대체되었지만 처음 느꼈던 불쾌한 감정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영국..

에세이 2024.09.12

봉정암 단상

나름대로 ‘워크숍’이란 제목에 일일 여행보험을 들어놓고 설악산에 갔다. 새벽 3시 50분경에 남설악 탐방 센터 입구에서 대청봉으로 올랐다. 밤이니 그저 앞을 가리키는 불빛만 보고 걸으면 된다. 돌길과 계단으로 오르는 길은 숨도 차고 힘들다. 앞뒤 일행들의 거리간격을 멀리하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걷기로만 했다. 발목과 팔다리 상태를 점검하고 최대한 고유한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천천히 어둠이 벗겨지는 것을 보면서 여명을 느꼈다.  서 있는 곳의 산세를 살피고 표지판을 가늠해보니 절반을 겨우 넘겼다. 지금까지 고생한 걸음걸이를 더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으니 하산해도 좋을법하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용기를 내서 8부 능선을 올랐다가 내려갔다오기를 반복하니 완만하고 육중한 대청봉의 등줄기가 발에 밟..

에세이 2024.09.12

봉정암 산행

금요일 저녁에 신사역에서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타고 토요일 새벽에 한계령에 도착하였다. 새벽 3시에 한계령을 들머리로 등산을 시작했다. 여러 산행 꾼들이 다들 머리에 랜턴을 키고 입구를 통과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어 걷다 보니 앞뒤로 등산객의 간격이 사라지고 혼자만 남았다. 어두운 산길을 홑 불빛에 의지하여 걷다 바윗길 골짜기에 자빠져 소리쳤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하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한계령 삼거리에 이르면서 서북 능선 등줄기를 타며 걸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로 배낭과 몸을 덮었다. 걷다 보니 어둠이 가시면서 새벽이 밝아왔다. 어느새 1시간 30분 늦게 출발한 등산객들과 대오를 같이하였다. 끝청을 지나 중청에 도달하자 대청은 지나치고 소청을 거쳐 봉정암으로 향하기로 했다. 소청..

에세이 2024.09.12

독립문 공원의 하녀들

저녁에 퇴근하면 하루에 작정한 거리를 채우기 위해 독립문 공원을 걷는다. 공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신경 쓰이는 광경을 목격한다. 젊은 여자들이 애완견을 공원 잔디밭에 놀리는 광경이다. 사유지가 아닌 공공 장소에서 자신들의 소유물을 마음 놓고 뛰놀게 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면서 서로 간의 상견례를 베푸는 바람에 무리가 늘어난다. 지난해에는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잔디밭에 굳이 개를 놀리려면 개 공원으로 가라고 하였더니 오히려 당돌하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냥 지나친 적이 있다. 개 사랑을 위해서 하는 짓이니 남의 취미 생활에 왜 간섭하느냐는 태도다. 비슷한 시간 대에 엄마 아빠와 함께 나온 어린이들이 잔디밭에 뛰어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지켜보겠다. 하지..

에세이 2024.09.12

38세 예수와 71세 소크라테스의 죽음

마태복음 27장 45-7절에 따르면 예수는 낮 열두 시부터 세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을 때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형장에서 큰 소리로 “엘리 Ἠλί 엘리 Ἠλί 레마 λεμὰ 사박다니 σαβαχθανί?”라고 부르짖었다. 그것은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거기 서 있던 사람들 몇 명이 이 말을 듣고서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라고 여겼다. 마가복음 15장 33-5절은 이 장면을 “엘로이 Ἐλωΐ 엘로이 Ἐλωΐ 라마 λαμὰ 사박다니 σαβαχθανί?”이라고 적었다. 그것도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다. 이 두 구절은 예수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했던 십자가의 칠언 七言 가운데 넷째 말씀이다. 아람어로 ‘엘리’와 히브리어..

에세이 2024.09.12

플라톤의 동굴과 예수의 빈 무덤, 하나님 존재 증명

플라톤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가 보고 지각하고 느끼는 현상은 진짜 세계가 아니라 영원불변한 이데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에게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이데아에서 온다. 실제로 종일토록 눈 뜨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현실을 둘러보아도 눈을 감고 잘 때 생각해보면 그럴 같기도 하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다. 뒤이은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한다. 여기서 바울은 플라톤을 원용하여 가시적 세계 뒤에 숨은 비가시적 세계를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어두운 동굴에서 사슬에 묶여 살아..

에세이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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