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워크숍’이란 제목에 일일 여행보험을 들어놓고 설악산에 갔다. 새벽 3시 50분경에 남설악 탐방 센터 입구에서 대청봉으로 올랐다. 밤이니 그저 앞을 가리키는 불빛만 보고 걸으면 된다. 돌길과 계단으로 오르는 길은 숨도 차고 힘들다. 앞뒤 일행들의 거리간격을 멀리하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걷기로만 했다. 발목과 팔다리 상태를 점검하고 최대한 고유한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천천히 어둠이 벗겨지는 것을 보면서 여명을 느꼈다.
서 있는 곳의 산세를 살피고 표지판을 가늠해보니 절반을 겨우 넘겼다. 지금까지 고생한 걸음걸이를 더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으니 하산해도 좋을법하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용기를 내서 8부 능선을 올랐다가 내려갔다오기를 반복하니 완만하고 육중한 대청봉의 등줄기가 발에 밟혔다. 이제부터 시간을 보지 않고 오르지 발걸음이 닿는 앞만 보았다. 이미 아침이 밝아온 가운데 산등선 좌우를 둘러보니 구름사이로 대청봉이 거느리는 계곡들이 어른 거렸다. 이제 거의 다 온 같다.
정상에 8시 10분경에 올랐으니 4시간 40분짜리 산행 기록으로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대청봉에서 잠시 기념 촬영을 하고 아래로 내다보이는 중청과 소청을 쉬지 않고 봉정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다. 모든 하산은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 일전에 중국 산동성의 태산에 올랐는데, 두 가지 문장을 유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나는 공자가 말했다는 천하가 작게 보인다는 이소천하而小天下고, 다른 하나는 내려가는 방향을 표시하는 하직下直이라는 단어다. 전자는 대청봉보다 200미터 낮은 곳에 올라가 읊은 중국인다운 글귀 같은데 후자는 우리말로 죽는다는 뜻이었다.
마음은 쉬고 싶은데 몸은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부릴 상태는 아니었다. 중청에서 쉬지 않고 다시 소청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허벅지에 쥐가 났다. 멈추어서 가만히 있느니 지나던 행객이 ‘많이 아프시냐?’고 물었다. ‘쥐가 내려서 아프다.’고 하니, 아프면 지금 들고 더 아프면 나중에 들라고 아스피린 두 알을 주었다. 한 알을 먹으니 신기하게도 걸을 수 있었다.
오늘 산행 목적은 신라 선덕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에 가서 부처님의 뇌 사리를 얻어와 봉안한 5층 석탑을 보는 것이었다. 설악산의 정체성은 불교와 관련이 깊다. 천개의 부처가 보인다는 천불동, 가야계곡, 금강굴, 나한봉, 등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그러하다. 소청에서 희운각 방향을 꺾어 봉정암으로 방향을 돌려 내려오는 길목에서 멈추어 섰다. 내려가는 바로 이래 길목에는 용아장성의 들쑥날쑥한 용의 이빨의 잇몸에 해당된다는 암벽 봉우리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이곳은 설악산 산 꾼들이 ‘신의 가장 위대한 신의 작품의 하나’라고 손꼽던 비경일 수 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지척의 봉정암을 내려다보며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떠올렸다. 두이노 성은 릴케가 깎아질 듯 아슬아슬한 절벽에서 외마디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가 휘날리는 비바람과 함께 절벽의 바위틈에 들러붙었다는 절경이다. 북부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가의 39미터 높이에 불과한 곳이지만 기암 묘석을 휘두른 봉정암의 전후 상하좌우를 경치에 비길 만 한 슬픈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적멸 보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길에 또 허벅지에 쥐가 내려 몸이 마음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두 가지가 생각났다. 하나는 아스피린을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이 생각났다. 어차피 잘됐다 싶었다. 137억 년 전의 우주빅뱅 이후의 3분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밝힌 노벨상 수상자인 와인버그에 따르면, 100분지 1초 이후에 우주의 온도는 섭씨 1011도이니, 너무 뜨거워서 거시기저시기 할 것 없이 뒤죽박죽이다. 46억 년쯤 지나 태양계와 지구도 생겨났으니 지금 천불동 계곡이나 귀면 암의 아슬아슬한 모습은 그 이후로도 한참 지난 이후에 생겨났던 셈이다. 누리 꾼의 설왕설래 따른 우주의 빅뱅에는 부처님보다는 하나님의 개입과 관련시키는 논의는 더 활발했다. 최근에는 조금이지만 양자 역학 파동의 중첩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불교를 더 많이 관련시키고 있다. 조금이라도 스치고 지나도 인연이 아니냐는 것이다.
페트병에 맑고 시원한 식수를 보충하니 이미 점심 공양이 시작되고 있었다. 11시 30분이라는 지나가는 말소리 시계를 들으며 하산을 재촉했다. 수렴동 계곡을 끼고 하산하는 길목에는 돌 더미가 많아 조심스럽게 바닥을 디뎌야 한다. 삐걱하면 발굽이 삐지거나 무릎의 관절이 삐걱거릴 수도 있다. 이윽고 두 줄기 폭포가 만나는 쌍폭에 이르렀는데, 이쯤을 오늘 전체 산행 거리의 절반으로 본다. 지금까지 온 고생을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고생을 생각하면 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잠시 길가에 쉬면서 사과나 초콜릿을 먹었는데 아직까지는 배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처럼 숨이 차지는 않았지만, 몸의 하중을 아래로 실어 내려내는 걸음걸이 기술이 필요했다. 나름대로 난간을 손으로 붙잡고 엉덩이를 아래로 해서 내려가 보지만 좀 웃기는 폼이다. 수렴水簾이란 물을 드리운 발이라는 뜻이다. 계곡 물은 온통 위에서 아래로 돌바닥 위를 손 살같이 달려갔다.
이윽고 수렴동 대피소가 보였다. 또 다시 내린 쥐들로 여러 번 구호를 청하거나 산행 실패를 선언할 생각을 가졌는데 바로 고쳐 잡을 희망을 품었다. 조금 더 가다가 김밥 한 줄과 삶은 계란 1개를 먹었는데 시계를 보지 않았지만 오후 1시 언저리로 보였다. 드디어 2시쯤이 되어 영시암에 도착했다. 그간 조려왔던 조바심이 풀리자 그간 충전하였던 휴대폰을 꺼내 스님의 독경을 들으며 영시암을 촬영하였다. 산은 국립공원이고 절은 암자의 것이지만, 찍고 녹음한 영상은 개인적이다.
이제 백담사까지는 1시간 30분가량이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안심이 되어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절기에 따라 절에 가서 묵다가 오시고 산에서 음식을 나누어 드시곤 하셨다. ‘산 메기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산에서 무엇인가를 먹이는 산을 대접하는 신앙이다. 옛날에는 말갈이나 그 밖의 종족들이 백두대간 동쪽을 관통해야 울릉도나 그밖에 내륙 지방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고 보았을 때 ‘산 메기’는 나름대로 산에 대한 신앙일 것이다. 나도 김밥 한 줄은 먹지 않고 들짐승이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산을 대접했다. 사실은 배낭이 무거워서 무엇이라도 빼야했다.
영시암을 뒤로 하고 수렴동을 따라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마이크로 들려주는 스님의 독경 소리와 경동교회 오르간 반주자의 후주가 스크랩되었다. 백담사가 가까이 오자 계곡 하류의 너른 광장에는 무수한 돌탑이 세워져 군상을 이루고 있었다. 누군가 불심을 쌓기 위해 쌓은 탑이지만 흐르는 물에 갈고 갈린 고른 돌 맹이가 자연스럽게 맞추어 올라간 같아보였다. 다만 부처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도 임종이 다가왔을 때, 당신의 딸이 ‘믿습니까?’라고 물으니 “예, 믿습니다.”고 대답하셨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무섭지 않은 천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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