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을 타면 들었던 멘트가 있다. “행복하세요!”. 좀 불쾌했다. 듣는 자에게 필요 이상의 행복의 조건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빈부격차, 인구 절벽, 기후변화, 세대 갈등, 등의 분야에서 문제 해법이 제시되어야 그 말의 의미가 다가올 수 있기다. 다만 모르고도 아는 척하고 떠벌이는 진중권 같은 자도 있다. 그의 멘트를 받아 미디어로 돌리고 조림하는 꾼들의 놀이도 역겹다. 나는 지하철에서 나오는 멘트를 듣기 싫어서 차라리 걸어서 이동했다. 하루 만 보를 정하고 걸으니 도보가 편했다. 그래서 도보와 지하철을 반반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개찰구 앞에는 3음절의 삑 소리만 들리고 행복을 전하는 메시지가 사라졌다. 삑 소리로 대체되었지만 처음 느꼈던 불쾌한 감정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영국에서는 반세기를 걸치며 배부른 돼지보다는 가난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행복의 질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쾌락의 증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므로 행복의 총량을 말할 때 정신적 행복도 따지자는 이야기였다. 계몽 시대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한번은 마차가 전복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1746년 에밀리 뒤 샤틀레 후작 부인과 시레이 성으로 향했다. 에밀리는 18세에 샤틀레 후작을 만나 아이 셋을 낳은 뒤 28살부터 이 성에서 당시 남성의 전유물이던 대학 공부를 하였다. 그녀는 천문학과 미적분 계산법을 배우면서 뉴턴의 『자연 철학의 원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볼테르는 1733년에 그녀를 만나면서 이 성을 리모델링하여 도서관과 실험실을 갖춘 사교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당시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는데 불테르 비서관 롱샴프가 인근 마을로 달려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롱샴프가 구조대를 이끌고 사고 현장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장면이 연출 되고 있었다. 볼테르와 그의 여친은 마차에서 방석을 꺼내어 눈 위에 갖다 놓은 다음 나란히 앉아 성운의 하늘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눈으로 관찰하였던 모양이다. 한스 블르멘베르크는 그의 책 『트라키아 여자의 웃음』에서 이 상황을 다음같이 묘사하였다. “그들은 완벽하게 행복하기 위해 망원경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늘 깊은 곳으로 방황했고 더 이상 땅 위의 슬픈 위치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눈과 얼음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위치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궁금한 것은 볼테르는 무슨 생각으로 추위로 말미암아 살가죽이 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들의 궤도와 넓은 공간에 놓인 세계 물체에 대하여 담론하였단 말인가? 당시 볼테르는 뉴턴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 시스템을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퍼뜨리므로 프랑스에서 뉴턴의 생각을 대중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에밀리 역시 볼테르와 함께 데카르트 기계론의 바탕에서 뉴턴의 중력을 받아들일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비록 우연히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두 연인은 공공연하게 드러날 사랑의 곡예를 포장하였던 모양이다. 볼테르는 “나는 가설을 두지 않는다.”라며 ‘최종 원인’에 대한 추측을 거부하는 뉴턴의 주장에 깊은 존경과 동의를 표하면서 “너희는 여기까지는 가되, 그 이상은 안된다. Precedes huc, et non ibis amplius.”라는 에피그램을 남겼다.
프랑스 합리론의 데카르트 운동 모델은 행성과 천체 운동도 그들을 밀어내는 어떤 힘을 전제한다. 반면에 영국 경험론의 뉴턴의 중력 이론의 물리적 힘은 강제로 외부에서 가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당구장 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면 뉴턴의 힘을 제대로 기술할 수 있다. 데카르트 운동 모델은 행성 궤도의 운동은 미묘한 물질이 소용돌이 형태로 밀고 밀리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다. 그러한 물질은 인간이 직접 감지할 수 없으므로 당대 학자들은 미묘하다고 여겼다. 이 미묘한 운동과 미묘한 물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한다면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오면서 무수하게 많은 어휘로 물질의 현상을 설명했던 20세기 초반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중력과 미묘한 힘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 차이에 대한 설명은 내가 얼마 전까지 전철 개찰구에서 “행복하세요!”라는 멘트를 듣던 상황을 압도한다.
독일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트라키아 여자의 웃음』에서 볼테르가 마차의 전복을 당한 사건을 ‘행복은 가불하고 이론은 차압한’ 일로 규정했다. 마차가 전복당해도 살았기 때문에 행복을 가불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가 이론을 차압했다는 것은 볼 것을 못 보게 하였던 일이 있었음을 강조한 말이다. 실제로 볼테르 마차에서 일어났던 연극 무대에서 커튼은 내려졌다. ‘테오도로스’라는 관찰자는 맹인으로 전락하였고 구경꾼은 볼거리를 놓쳤다. 『트라키아 여자의 웃음』은 서양철학의 비조 탈레스가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다 우물에 빠지자 하녀가 웃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하녀의 관점을 아슬아슬한 절벽에서 포효하는 바다 위의 난파선을 냉혹하게 바라보는 구경꾼의 시점으로 조명한다. 타자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는 이론은 불행을 차압하므로 미묘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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