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1300년 4월 부활주일 수요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항성천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서니 온 우주는 주의 영광에 따라 빛이 덜 비치기도 더 비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성스럽고 자비로운 은혜로 이루어지니 만감이 교차했다. 베아트리체가 밑으로 내려다보라고 눈짓을 해서, 밑을 내려다보니 일곱 행성과 지구가 보였다. 베아트리체가 태양을 쳐다보자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눈 안을 응시하였다. 그 순간 두 연인은 달의 신비한 부분을 두고 특이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곳에서 살펴보니 어째서 달에 꺼무튀튀한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단테는 중세학문의 최고의 권위자인 아베로이스 학설을 인용하여 그 이유를 빛의 농도의 차이라고 답변한다. 그러자 베아트리체가 방긋 웃으며 틀렸다고 말하면서, 항성천은 많은 별들을 거느리므로 빛의 양과 질 때문에 별들이 달리 보이게 된다고 고쳐주었다. 별들은 지상과는 달리 다른 원리가 작용하지만, 이곳에서 보면 하늘은 위의 하늘로부터 아래의 하늘로 그리고 바로 그 아래 하늘로 하달을 받아 내려가므로 세상만사가 그러한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갈릴레이는 달 표면의 반점을 카인이 유배되어 영원히 어깨에 가시덤불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곳으로 묘사하였다가 1609년 망원경 관찰에서 “들쭉날쭉한” 선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달 표면의 고도와 함몰을 인식하였다. 갈릴레이는 조명이 없는 달의 반구와 조명이 있는 반구로서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경계선에 밝게 빛나는 산봉우리를 “쿠스피디” 뿔이라 불렀고, 이 뿔을 이용하여 산봉우리의 거리와 고도에서 산의 높이를 정확하게 64km로 측정하였다. 그는 달 표면의 어두운 부분은 매끄러운 반면 밝은 부분은 불규칙하므로 전자는 저지대 평원이고 후자는 산으로 덮여 있다고 추론하면서 최초로 달의 얼굴, 즉, 월면도를 작성하였다. 갈릴레이는 파도바 대학의 동료인 크레모니니에게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했다. 크레모니니는 갈릴레이보다 두 배나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망원경 관찰을 거부하였던 몇몇 학자들의 일인이었다. 그가 망원경을 신뢰하지 않은 이유는 육안 대신 망원경을 통해 보았는데, 망원경을 통한 이미지가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어지럽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갈릴레이는 파도바 대학을 떠나 피사 대학으로 옮기면서 나중에 1630년 『두 세계에서』에서 크레모니니를 ‘얼간이’라고 조롱하였다.
크레모니니가 망원경 관찰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적 해석을 둘러싼 대립된 견해 때문이다. 당대는 아리스토텔레스 『천체론』에서 열과 빛은 ‘천체의 운동으로 인한 공기의 마찰로 발생한다.’에 대한 권위적 해석으로 ‘하늘은 빛과 운동에 의해서만 열등한 사물에 작용한다.’고 보았다. 그는 동료 의학 교수인 산토리오와 더불어 천상의 물질을 4체액의 하위 요소와 완전히 구별하고 천체와 월하 세계의 물질 사이를 양립불가능한 곳으로 보며 태양중심설을 거부하였다. 4체액 설은 공기, 물, 불, 흙이라는 4원소에 대하여 인체는 혈액과 점액과 황담즙과 흑담즙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체 이론으로 역사적으로 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에 관련되어 있다는 기질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이 이론은 사계절에서 4체액 사이의 균형이 맞으면 건강한 상태고 불균형이면 기질에 따라 질병이 발생한다고 본다.
크레모니니는 인간의 종자에 포함된 생명 열은 천상의 열과는 동일하지 않고 단지 유사할 뿐이라서 살아있는 존재의 선천적 열은 불의 원소의 열과는 다른 천상의 열로 추정한다. 그렇지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상의 영향과 감추어진 오컬트 인과 관계에서 천체가 하체에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생겨난 정액의 생명의 열에 대하여 매우 우중충한 입장을 대변하였다. 천상계의 열과 선천적 열의 관계, 살아있는 선천적 열과 불의 원소의 관계는 어떤 뚜렷한 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관계는 갈릴레이가 말하던 “들쭉날쭉”한 선에서 들락날락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늘은 모든 월하의 물체에 작용할 수 없고 이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원동 천에서 알아보았던 대로 세상 만사를 ‘조정’된 물체에만 작용하게 하고, 천동설과 지동설의 체계 갈등이 생겨나던 시기이기 때문에 타고난 열과 천상의 열이 다를 수 있었다.
영원하고 썩지 않는 천상의 요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견해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엉터리 해석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엉터리 해석과 관련되어있다. 정액이 세계 영혼과 동등한 천상의 열로 영혼을 형성하는지, 하늘이 월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생성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을 통하여 기각되거나 반박될 논쟁 꺼리에 불과하였다. 그러니까 이것이 혹은 저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이라고 둘러대므로 자기의 주장을 포장하는 것이 후기르네상스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전의 시류였다. 크레모니니는 정액의 자연적 열은 천상의 열에 비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신체 혼합물의 미덕의 기능은 누구에게나 있는 기본의 기본 특성에서 온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말하자면 4체액 설에 비추어 베네치아나 시칠리아, 경상도나 전라도, 평안도나 함경도 사람의 기질에 따라 정액을 고찰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체액 설은 4원소설과 결부되어 천상의 불멸성과 지상의 소멸성이 대비되는 천동설에서 태양중심설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동료로부터 “감각을 통해 원소의 본질을 알 수 있게 하여 잠재적으로 닫혀있는 화합물 원소의 명료성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커튼을 들어 올렸던’ 인물”로 유명세를 탔다.
크레모니니는 애써 점성술을 무시하고 의학은 오컬트 영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타고난 열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존재의 혼합물의 주요 특성은 천상의 열에 의해 활성화되더라도 실체와 관련하여 비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를 요약하자면, ‘정액에서 발견되는 선천적 열은 지상의 혼합물의 열과 정도에 따라서만 다르다.’ 여기서 ‘타고난’, ‘선천적’, ‘천상의’ 등은 애매한 표현으로 베아트리체의 빛의 양과 질에 대한 유추를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그의 동료인 해부학 교수 카이모는 1626년 살아있는 열의 존재는 기질과 관련되고 영원한 열혈 정신의 영혼과 관련된다면서 크레모니니의 생각을 반박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의 장단에 대하여」에서 ‘모든 생물은 본성적으로 젖고 뜨겁다’를 인용하면서, 도마뱀과 뱀은 기질에 열이 없어 만지면 차갑기 때문에 생명을 주는 다른 종류의 열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종류의 열기는 ‘천상의 것’으로 결론지었다. 크레모니니와 카이모의 살아있는 정액의 열기에 대한 논점은 오십보백보로 차이가 없다.
크레모니니의 정액 연구는 파도바 대학 의학부 학생들도 참여한 프로젝트로 정액의 존재 여부와 누구의 것인지의 실재의 여부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충분하게 소명되지 않았다. 그러나가 17세기 후반에 망원경의 천체 관찰과 더불어 현미경관찰에 의한 미시 영역의 연구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자 의학 논쟁은 곧바로 연구 윤리와 직결되었다. 현미경으로 인간 정액을 직접 관찰한 네덜란드의 하르최커는 신성한 부부 성교에 의한 산물이라는 점을 보고서에 기록하여 연구 윤리를 따른다고 명시한 다음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는 렌즈 너머로 정액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무수하게 많은 호문쿨리를 발견하고, - 그는 이놈을 불어로 ‘작은 아이’라 불렀는데 - 그 놈에서 생명이 나온다고 보았다. 당시 프랑스 신학자 말브랑슈는 이 정액 대가리야 말로 아담 이래로 인류의 미래 생명의 생성을 짊어지는 원상이라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런데 정액이 천상적인지 혹은 방사 이후에 이 꼬불꼬불한 개체들이 언제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만나는지는 라이프니츠의 시각이 새로운 빛을 던진다. 라이프니츠는 정액이 방사될 때 한 개의 난자를 만나지 못한, - 즉 구원받지 못하여 살아남지 못한 무수한 잉여 정자들이 뿔뿔이 유성으로 흩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생명은 외계에서 온다고 보았다. 생명이 외계에서 온다는 학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만사에는 충족 이유가 있으며, 그렇게 생겨난 이 세계는 신이 구상한 모든 가능한 세계들 가운데 최선의 선물이라는 그의 양상논리의 원격논증에 기반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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