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세종로가 시작된다. 광화의 한자는 광光에 될 화化다. 비슷한 단어가 광복이다. 광복에는 돌아올 복復이 있다. 광화는 빛이 되고 광복은 빛이 되돌아온다는 의미다. 빛으로 하고 되는 일은 많다. 뉴턴은 젊은 시절 흑사병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이 폐쇄되자, 고향집에서 방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실험을 하였다. 어둔 방안이 벽에 작은 구멍을 내고 빛이 통과하는 틈에 프리즘을 갖다 대었다. 놀랍게도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이 비쳤다. 자신이 케임브리지 캠 강에서 열린 자선 시장에서 직접 프리즘을 사서 깎고 갈아 만든 렌즈였다. 이번에는 반대편 벽에 부딪친 빛의 줄기에 또다시 프리즘을 갖다 대니, 무지개 색은 처음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백광으로 돌아갔다. 뉴턴은 이 실험으로 빛이 최단 거리로 직진하다가 매질을 통한 입사각 ÷ 굴절각에서 회절 현상이 일어나는 사실을 완벽하게 증명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섯 가지에 불과하던 빛이 일곱 가지가 되었고, 빛의 스펙트럼은 음의 주파수 대역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소나 시스템에 음속, 광속, 충격파가 모두 통합된다. 첫째 프리즘은 광화, 둘째 프리즘은 광복에 해당된다. 뉴턴은 1666년 놀라운 해에 광화와 광복의 광학 실험을 완성하였다.
뉴턴의 연구 성과는 오늘날 광가속기설비, 레이저 컬러 프린터, 항공기 레이더 장비, 반도체 노광장비 생산 설비까지 고도의 최첨단 원천 기술로 발전하여 비싼 값으로 팔려나간다. 방구멍으로 들어온 빛을 무지개 색에서 백광으로 돌려보낸 실험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현재가 과거로 돌아감을 의미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자면, 아직까지 빛보다 빠른 것이 없고, 설령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해도, 인류는 아직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태양보다 수천만 배나 밝은, 뜨거운 열로 가공할 빛의 영광을 재현한 물건이 있다. 이것이 인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3일 후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다. 아인슈타인이 1939년 8월 2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일정량의 우란으로 연쇄 핵분열 반응을 일으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암시를 하였고, 그것은 원폭제작을 위한 맨해튼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당시 한창 진행 중인 2차 세계 대전의 600만명의 유태인 인종 학살의 위기에 앞에서, 그의 편지는 나름대로 죽어가는 동족을 위해 전쟁 종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물리적 힘을 염두에 두고 대통령을 권유한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올 소지도 있었다.
과거 일제 패망으로 조선에 봉건적 잔재를 털어버린 것은 해방이고, 일제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난 해방은 자유이다. 주권의 침탈에서 주권의 회복, 노예 신분에서 국민으로서의 권리 회복, 국토 상실에서 국토회복, 국권 상실에서 국권 회복, 잃어버린 재산에서 재산권 회복, 등등 억압과 압박으로부터 온 해방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논 서마지기 값으로 족보를 사서 이름을 올려놓을 터이니, 이 사실을 죽어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유언을 후손에게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미 고인이 되신 한반도의 여러 한국인 어르신들은, –내가 보기에는 욕심이 많았던 전주 김씨 김일성과 그의 주변 인물들- 전쟁 방식으로 집단적 주어에 대한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 싸움을 걸었다. 6. 25 동란 이후 서울은 공산군에 의하여 빼앗기고, 부산까지 피란을 갔지만 낙동강 전선에서 간당간당하다가, 인천 상륙 작전과 더불어 북진하였고, 서울은 수복되었고 뒤이은 공격에서 압록강까지 올라가서 만주까지 치니 마니 하였지만, 인민군이 내려오면서 1. 4 후퇴를 맞이하였고, 1. 4 후퇴 이후에 철의 삼각지의 백마고지 전투, 해리 고지 전투 등으로 서울은 방어되었고,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빛은 진리를 은유한다. 빛을 찾아 나서는 것을 진리를 찾아 나서는 길에 비유되기도 한다. 플라톤은 빛을 어둠에 대비하여, 진리와 비 진리, 교양과 무식, 반성과 무반성, 존재와 비존재 등의 대립에서 이원론을 표방한다. 하이데거의 플라톤 해석에 따르면, 진리는 덮인 것을 드러내는 알레테이아 ἀ-λήθεια다. 어둠에 덮인 것이 레테이아 λήθεια이면, 이를 들추어내는 탈격 아 ἀ가 앞서 안보이던 것을 볼 수 있게 하므로 진리를 드러낸다. 플라톤은『국가』7권에서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동굴에서 살아가는 죄인들 가운데 사슬을 풀고나온 철학자가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바라보므로, 어둠의 구속에서 벗어나 빛에 이르는 여정을 해방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일제의 구속에서 해방을 얻기 위하여, 타도대상으로 삼았던 일제가 패망하였으니, 좀 유식하게 철학적으로, 광화와 광복과 자유와 해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반도에 독립 국가를 세울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일제를 욕할 수는 있어도 미국 제국주의자라고까지 덧붙여서 욕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해방이 된 것은 원폭의 힘 때문이고, 원폭은 미국이 사용하였다. 다만 저희들이 소련과 중공과 손잡고 6.25 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국과 유엔 16개국에 당했기 때문에 미국 제국주의자라고 욕하는 데에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이 남한을 손안에 넣겠다고 마음만 먹었으면 먹힐 판이고, 소련이 마음만 먹었다면, 혹은 중공이 그래서 북한을 먹겠다고 그랬다면,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정치 세력은 헤겔 변증법에서 보자면 절대적 대자적 힘으로 지양되지 않으면 불가항력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 왜란에 명과 조선은 합작으로 일본 침략을 막았지만, 힘을 쏟아 부은 명은 얼마지 않아 신흥 강자 만주족의 청에 의하여 패망하였고, 시간이 지난 다음, 청은 다시 일본에 패배하므로 조선의 자주권과 외교권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런 힘에서 봉건적 요소가 사라졌고, 그 힘을 원폭이라는 과학 기술의 힘이 대치하였기 때문에, 주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북한은 무슨 혁명 세력이니 뭐니 해서 그들이 일제 시절에 만주 벌판이나 연해주 등지에서 개고생하며 독립 운동한 덕택에 이를 대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착각이다. 그 정도의 독립 운동은 특별히 친일 세력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조선사람, 곧,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했다. 그러니 무슨 뚱딴지같은 혁명이고, 존엄이고, 주체 세력이고, 빨치산이고, 백두 혈통이니 등, 무슨 똥개 품종을 자랑하는 것도 아닌 회괴 망측한 어휘로, 북한 동포들이 남한과 같은 평등한 권리로 한반도를 살아가게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위하여 북한 전역에 국군이 진격하여 물리적으로 통일한다고 할 때, 옛날처럼 중공군이 북한을 돕는다고 해도, 아니 도와 주다 중화인민공화국 자체의 존립이 무너진다 해도, 중국에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 그만이고, 러시아도 옛날처럼 어수룩한 짓을 자초하지 않는다.
36년간 지배하였던 한반도에서 일제의 구속으로부터 얻은 해방과 속절없이 치고받은 6.25 전쟁의 피 값으로 지킨 평화가 다르기 때문에, 해방을 광화와 광복이라는 단어에 맞추는데 주의하여야 것이 있다. 36년간의 시절에 국권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김문수라는 자가 그 시대의 조상은 일본국적자라고 주장을 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자의 논변이다. 역사의 긴 호흡으로 임진왜란의 7년 병자호란의 2개월 일제의 36년 등을 보면 김문수류의 주장은 호로자식이 어쩔줄 몰라 적당하게 힘쎈 놈의 편에 줄을 댄 견강부회 논의다. 일제의 타도와 극복의 대상이던 힘이 최첨단 과학기술의 힘으로 대치되므로, 절대적 대자적 힘에서 봉건적 요소가 사라졌고, 한꺼번에 수많은 것들이 들어와서 주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광복과 동시에 해방이 왔고, 빛이 다시 돌아왔으면 다행스러운 것이고, 다행은 복이면 족하다. 광복이 너무나 쉽고 가볍게 다가와 나라를 되찾았으므로, 광복과 복이 온 이유와 배경에 대해, 좀 뚱뚱하면서 뒤통수가 통통하게 살이 찐 어떤 젊은 이북 사람이 어떤 다른 문맥에서 말한 것이지만, 듬성듬성 건성 건성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차근차근 곰곰히 생각해보면 38선 이남과 이북으로 승전 국가로 들어온 미소美蘇는 미소微笑 대상이다.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심 둘레에 일중日中도 몰려있다. 미소와 일중으로 둘러싸인 곳에는 원자가 아닌 미소微小 지각이 필요하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런 미소 지각을 모나드라고 불렀다. 원자적 사유란 단단하고 견고한 물질의 단위에서 운동 법칙을 따르나, 미소 지각은 정신을 본질로 정신을 으뜸으로 주변의 물질 단위를 조직한다. 뭐 뾰쪽한 수가 있는가? 내 몸과 마음이 정신과 물질,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며 미소 지각으로 환하게 웃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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