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봉정암 산행

record9218 2024. 9. 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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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에 신사역에서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타고 토요일 새벽에 한계령에 도착하였다. 새벽 3시에 한계령을 들머리로 등산을 시작했다. 여러 산행 꾼들이 다들 머리에 랜턴을 키고 입구를 통과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어 걷다 보니 앞뒤로 등산객의 간격이 사라지고 혼자만 남았다. 어두운 산길을 홑 불빛에 의지하여 걷다 바윗길 골짜기에 자빠져 소리쳤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하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한계령 삼거리에 이르면서 서북 능선 등줄기를 타며 걸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로 배낭과 몸을 덮었다. 걷다 보니 어둠이 가시면서 새벽이 밝아왔다. 어느새 1시간 30분 늦게 출발한 등산객들과 대오를 같이하였다. 끝청을 지나 중청에 도달하자 대청은 지나치고 소청을 거쳐 봉정암으로 향하기로 했다. 소청에서 희운각을 내려다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렸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1시간 30분 더 일찍 중청에 도착하고 30분쯤 후에 희운각에서 도착해야 했다. 공룡능선을 타고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하산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신체적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봉정암에 도착하여 페트병에 물을 보충했다.

 

가야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첫 길목인 해탈 고개에 앉아서 물로 목을 축이며 쉬었다. 아래에서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하산은 하체와 무릎을 잘 관리하며 내려가야 한다. 몸이 피곤하니 올라오면 산행객과 간단히 주고받는 말이 귀찮아졌다. 뒤에서 잠시 비켜 가겠다는 말이나, 앞에서 기다려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있었지만 반응하는 것보다 가만있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건네 오는 말에 간간이 마음이 동할 때도 있었다. 하산길에 좀 활짝 핀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쌍용 폭포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줄지어 목에 광주 불자라는 명패를 달고 올라온다. 한참 지나니 이번에는 부산 불자의 무리가 올라온다. 봉정암으로 불공을 드리러 올라온다. 광주와 부산 불자가 모두 불공을 드리러 오는 곳이니 봉정암이 대단한 곳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렴동 계곡으로 들어서면서 미역말랭이 봉지를 배낭에 놓고 올라오는 한 불자를 보았다. 공양을 위해 미역을 갖고 가시느냐고 묻고, 봉정암은 왜 불자만 재우느냐고 불평의 말을 꺼냈다. 오세암과 봉정암에 묶어가고 싶다고 전화하니 불자가 아니라고 퇴짜 맞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색하며 전화하고 묶어가겠다고 말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음번에는 절에서 묶어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한참 내려오다가 다른 불자 일행을 만났는데 떡을 드시라고 했지만, 냉커피 한 모금만 얻어 마셨다. 좋은 말을 하고 싶어서 보살님들이시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성불하십시오라고 말을 보탰다. 올라오는 불자들의 행렬이 장관이지만 그 자체가 불심이고 불공으로 보였다. 봉정암 위의 산 언덕에 있는 5층 석탑만 하여도 주변 자체가 부처의 얼굴이다. 한국불교의 기도처는 참으로 심산유곡의 기막힌 기암절벽에 있다.

 

설악산은 하나님이 창조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조물주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 불교가 일을 더 많이 하였다. 천불동 계곡, 가야 계곡, 수렴동 계곡을 합하면 가히 삼천불은 보여줄 것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화가 나셨을 때 하던 삼천불이 난다.”라는 표현을 들어온 적이 있다. 사전을 살펴보니, 과거 현재 미래의 천 불을 합한 삼천불이라는 뜻이었다. 잘 모르지만, 그것이 장차 나타날 보살이라면, 설악산은 잘 살피며 걷기만 해도 삼천불은 볼 수 있다.

 

기독교인의 산행은 불자에 비해 편해 보인다. 산길이라 홍해를 가르는 이적도 요단강 건너편에서 다시 만날 약속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스틱을 바위에 찍고 하산하는 신체 부위별로 무게 균형을 맞추면 늦게 가더라도 전진할 수 있다. 다만 배낭을 둘러맨 어깨죽지 부근이 억지로 마나 고난의 자국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윽고 수렴동 대피소를 거쳐 영시암에 도착하였다. 영시암을 지날 때 듣게 되는 스님의 마이크 독경이 있다. 이번에는 스님 스스로 지으신 글귀로 염불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인즉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안타깝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이 올 때가 있는데' '그다음 어떻고 어떻게 한다는 구절을 읖조리시는 같은데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시암이면 다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였다. 백담사 계곡은 평지일지라도 같은 패턴으로 지루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걸어야 한다. 백담사 탐방센터 계수 판을 통과하여 조금 더 걸으니 용대리로 가는 버스가 대기한다. 매표소에서 2500원에 표를 끊고 버스에 몸을 실어 용대리로 향한다. 용대리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10여 분을 걸어 한계령 대로길로 나와서 안내산악회 버스를 기다렸다. 여러 대의 버스가 지나고 난 뒤 내가 타고 온 버스가 왔지만, 모르고 있었다. 기다리던 여러 사람이 버스를 탔지만, 사람을 더 기다리고 있어서 혹시나 해서 이 버스가 그 버스냐?’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이 버스 소속 산악 회원인데라며 버스에 올라탔다. 한계령을 들 머리로 하고 백담사를 날 머리로 하는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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