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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명령과 만추의 낙엽

언어 철학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문맥의 맥락과 사용 용도에 따라서 의미론을 구축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단어나 말이라도 그의 사용 용도에 따라 의미를 알아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노동 현장에서‘벽돌!’이라고 말했다면, 발화 사용자의 발화에서 일어난 상황의 분석으로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쾅’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그것은 발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사태에서 그 의미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발사대에 선 누리 호를 TV로 시청하다 ..., 3, 2, 1, 0의 카운트를 듣는다면, 보는 것은 단어가 가리킨 대상의 직접적 사태이지 말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벽돌’이 일하는 동료들의 의사 소통 사태를 기술하는 대상 언어라면, ‘쾅’이라는 의..

에세이 2024.10.02

진리 개념과 외부 세계 존재 증명의 역설

진리는 무엇을 참이라고 진술할 때 관련되는 개념이다. 말을 꺼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맞으면 참,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다. 이것은 참과 거짓을 수동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이다. 가만히 있으려고 거짓을 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능동적이다.현대 논리학자 타르스키는 일상 언어에서 사용하는 참이라는 관념을 도입하여 진리 개념을 분석하였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진리는 사실과 표현, 혹은 진술의 적합한 일치이다. veritas est adaequatio intellectus et rei라고 이른다. 어떠한 진술이라도 말로 외부세계 사태를 정확하게 기술하여 표현한다면 참으로 본다. 타르스키는 일상 언어의 참의 관념을 형식 언어에 담아서 진리 개념을 명료하게 하였다. 형식 언어란 참이나 거짓을 진술하는 표현들을 취급할 수..

에세이 2024.10.01

내일 일출의 불가능 논증과 확률

형이상학은 자연을 넘어선 대상을 탐구하는 철학의 분과이다. 왜, 세계가 존재하는지, 영혼이 있는지 혹은 정신이 존재하는지, 하나님이 계시는지, 계시면 알 수 있는지, 등, 주로 최후의 물음을 다룬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감각적인 경험 한계를 넘어선 인식의 요구 때문에 지난 세기에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가 멀쩡한 오감의 감각 기관으로 세계를 지각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 이외 철학에서는 버팀목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칸트는 『미래 형이상학 서설』에서 수없이 많은 외부세계 실재의 존재 증명을 해왔지만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철학의 스캔들이라고 우려하였다. 칸트는 외부세계는 우리의 관찰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으로서 물 자체이므로 형이상학은 불가능하고, 형이상학..

에세이 2024.10.01

코페르니쿠스 체계 VS 인간의 “이상화된 위치”

천동설은 지구는 우주 중심에서 가만있고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이론이다. 이와 반대로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태양이 가만있고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고 한다. 후자는 지구가 원래 있던 자리에 태양을 스위치 시키면서 태양의 위치를 우주 중심에서 약간 비켜놓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는 지구도 다른 별처럼 한 별이고 자연 운동을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중세 대학에는 야단법석이 일어났다. 그동안 천동설 행성 체계를 지지하였던 7 학예 자유 인문학의 분과가 와해 되었기 때문이다. 문법, 수사학, 논리학의 3과목과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의 4과목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근대 과학이론의 발원에 대하여 화이트헤드나 쿤 같은 학자들은 중세 신학으로부터의 무의식적 도출로 본다. 어떤 학자들..

에세이 2024.09.30

갈릴레이의 위증과 『신곡』의 쑥대밭

1633년 6월 22일 로마의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수도원에서 70세의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에 출석하였다. 이곳 광장은 33년 전 부르노가 산채로 나뭇더미에 불태워져 잿더미로 변한 곳이다. 브루노와는 달리 갈릴레이는 아버지 빈센쵸의 아들임을 밝히면서 “지구는 움직이고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론은 틀렸음”을 맹세하였다. 이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간 갈릴레이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 마지막 인생을 보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까짓 성당 안 나가면 그만이지 뭣 때문에 개고생이냐고 하겠다. 하지만 당시는 가톨릭교회가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결정하였다. 개신교 군주들과 합스부르크 황실과 가톨릭은 국가와 민족의 존망을 걸고 30년간의 종교 전쟁을 치를 정도였다. 갈릴레이의 법정 최후진술은 사실을 왜곡한 철..

에세이 2024.09.29

「아테네 학당」의 새로운 읽기

바티칸의 교황 서제에 있는「아테네 학당」프레스코 정면에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 스승 플라톤은 왼손에 자신의 저작 『티마이오스』를 붙잡고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화랑 안으로 들어선다.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왼손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붙잡고 오른손바닥으로 바닥 땅을 가리키며 중앙 회랑으로 들어선다. 프레스코 정면에 바라보았을 때 스승은 좌측에 서고 제자는 우측에서 각각 하늘과 땅을 지시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케임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두 철학자가 이상론과 실재론이라는 인식론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 이외에 새롭게 부상한 태양 중심 세계상의 독법을 숨겨놓았다. 그 실마리는 지금까지..

에세이 2024.09.28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사랑

-1925년 마르부르크 대학 여름 학기- 1925년 여름 학기 마르부르크 대학 하이데거 세미나에서 가다머는 ‘최초의 인간이 고개를 들었을 때, 세계가 거기 있었다.’라고 메모하였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는 최초의 인간이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마르부르크 대학 교수진으로는 불트만, 하르트만, 폴 틸리히, 나트로프 등이 포진하였고, 학생들로는 가다머, 아렌트, 뢰비트. 슈트라우스, 클라린, 안더스, 요나스 등이 군집하고 있었다. 독일의 남부 지역은 신 칸트학파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전통 철학의 시각은 후설, 야스퍼스와 더불어 하이데거를 열외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조교로 시작하여 마르부르크 대학교수가 되었고 대학 개혁 운동에 참여하고 있어서 반동으로 찍혀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독일대..

에세이 2024.09.27

해리고지의 사랑

산자가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고,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전자가 타당한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을 어길 수 없기 때문이고, 후자는 서양 중세 천년의 긴 역사에서 볼 수 있었듯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양자의 영역은 각각 철학과 신학에 속한다. 서로를 관통하는 힘에 대하여 과학은 E=mc2로 정량화하였고 인문학은 E를 Love라고 노래 불러왔다. 혹자는 이를 도라고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이 짙어지자, 히틀러는 그의 연인 에바와 결혼식을 올린 다음 동반자살 하였고, 1945년 7월 나치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자, 미 영 소는 7월 21일에서 8월 2일까지 포츠담에서 종전 협상을 개최하였다. 3명의 연합군 수..

에세이 2024.09.23

마르크스의 감각과 계급 투쟁

마르크스는 파리 망명 시절에 프랑크푸르트 민의원 출신인 민주주의 좌파 루게와 같이 발행한 1844년 『프랑스-독일 연감』에서 헤겔 『법철학』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헤겔 좌파라고 밝힌다. 1867년 『자본론』 1권의 뒷말에서 자신은 헤겔의 신비적 껍질 속에서 합리적 핵심을 발견하기 위해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뒤집고 싶다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이렇게까지 자신에서 헤겔을 내치지 못한 까닭은 그만큼 헤겔과의 사상적 결별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헤겔을 좌우와 중도파로 나누는 것은 슈트라우스가 『예수의 생애』을 출간하면서 분류한 헤겔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헤겔 철학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종교 철학이 놓여있었기 때문에 헤겔 우파는 헤겔을 기독교 철학의 완성자로 보았다. 반면에 헤겔 좌파는 변증법적 무..

에세이 2024.09.20

루체른의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부고

]1882년 5월 프랑스 사진작가 보네는 스위스 루체른의 스튜디오에서 한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자가 마차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성은 수레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체 손에 라일락 치킨의 채찍을 들고 있다. 두 남성은 정장에 팔에 완장을 두르고 ‘징집된 마차’에 마구를 끄는 모습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남성은 말처럼 수레에 몸을 묶었고, 서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이 사진에 드러난 이미지는 니체의 제안이다. 니체는 이 사진으로, 21세 여대생, 32세 철학박사, 37세 전직 대학교수의 “삼위일체” 관계를 완벽하게 연출했다고 설명하였다.  이 사진 안의 여성은 1861년 2월 1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짜르 황제의 장군과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에세이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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