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 교황 서제에 있는「아테네 학당」프레스코 정면에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 스승 플라톤은 왼손에 자신의 저작 『티마이오스』를 붙잡고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화랑 안으로 들어선다.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왼손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붙잡고 오른손바닥으로 바닥 땅을 가리키며 중앙 회랑으로 들어선다. 프레스코 정면에 바라보았을 때 스승은 좌측에 서고 제자는 우측에서 각각 하늘과 땅을 지시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케임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두 철학자가 이상론과 실재론이라는 인식론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 이외에 새롭게 부상한 태양 중심 세계상의 독법을 숨겨놓았다. 그 실마리는 지금까지 플라톤과 같은 선상에 배치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우측에 서 있었던 플로티노스를 아리스타코스로 바꾸어 보았을 때 드러난다. 지금까지 그 자리에는 플로티노스가 오롯이 서 있었다고 보았지만, 왜 그가 그 자리에 있는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자의 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키 보다 배치되어 있어서 화면의 전체 구도에서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바가 있다.
조르조네의 「세 철학자」
케임은 빈의 예술사박물관이 소장하는 1505년 1509년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조르조네 Giorgione의 「세 철학자」 캔버스 유화에서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 작품에는 한 젊은 청년이 앉아서 피타고라스 정리로 천체를 측정 중이고, 위로는 흰 두건을 쓴 아랍인과 황금 망토에 긴 수염을 한 아리스타쿠스가 서 있다. 아랍인은 중세 아랍 지식을 서방세계로 전송하는 아베로이스 정도로 추정된다. 이 그림의 아리스타코스의 모습은 라파엘로가 배치한 아리스타코스의 외모와 같다. 조르조네의 작품에서 눈길을 끈 부분은 양손으로 펼쳐 들고 있는 아리스타쿠스의 연구 노트다. 이 연구 노트 표면에는 0.72센티 길이 직경의 달이 3배 크기의 2.07센티 지구 직경으로 파묻혀 들어가는 월식이 그려져 있다.
이자는「아테네 학당」에서 붉은 베니스 망토를 걸치고 양손으로 자신의 저작을 움켜잡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는 망토 안에 어떤 저작을 숨기고 있었는데 지오르지네가 그려놓은 자신의 연구 노트로 추정할 수 있다. 그가 갑자기 잡아당기듯 확 빼내려 공개하려는 순간 바로 옆의 한 스토아주의자가 지팡이를 짚고 나서며 저지하였다. 이자는 스토아학파의 2대 수장 클레안테스이다. 그는 아리스타쿠스를 준엄하게 견책하면서 그가 주장하려는 언어적 표현에 대한 교수와 학습 금지령을 학파의 제자들에게 하달한다. 아리스타쿠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대각선 방향으로 회랑 하단의 피타고라스학파에 눈길을 던진다. 그리고 동시에 왼손 검지로 계단 바로 아래 천구의를 가리킨다. 이러한 삼박자의 긴급한 모습이 말해주는 바가 있다.
아리스타코스와 아래의 필롤라우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케임은 이 장면에서 우리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아리스타코스와 피타고라스학파가 공모하고 있는 제스추어는 계단 아래에서 전광석화처럼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리스타코스 바로 아래의 인물은 코페르니쿠스가『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서문에서 언급한 필롤라우스 Philolaus다. 그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제자로 오른손으로 거대한 중심 불덩이 둘레로 회전하는 천구의를 돌리면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인물에 맞서고 있다. 필롤라우스 맞은편의 인물은 프톨레마이오스로 두 손으로 지구의를 꽉 붙잡고 맞은편의 인물을 향해 바쁜 걸음으로 달려간다. 필롤라우스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면대면의 대립각을 마주 세우고 있다. 황금빛 옷을 입은 프톨레마이오스는 상대를 정면으로 대하지 않고 코페르니쿠스가 서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뒷모습은 영광스럽고 찬란했던 지구 중심 천문학 이론가의 권좌를 상징한다. 필롤라우스 역시 프톨레마이오스를 바로보지 않고 코페르니쿠스 방향으로 얼굴을 돌린다.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천문학자 옆의 회랑 우측 기둥에서는 라파엘로와 코페르니쿠스가 나란히 서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흰옷을 입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황금빛 옷자락에 손발이 완전히 묻힌 가운데 긴장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는 약간 머리를 들어 올리므로 새로운 세계관을 확신하며 미소짓고 있다. 라파엘로는 검정 납작 모자를 쓰고 두 체계의 논쟁 거리를 넘어서 차분한 모습으로 정리하면서 코페르니쿠스 곁에 선다. 케임은 라파엘로가 코페르니쿠스가 입은 흰옷은 과학적 윤리적 관점에서 무죄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그가 입은 흉부에서 목 부분까지 두른 검정 내의는 죽음을 예감하는 상징이었다고 해석한다.
검정 납작 모자를 쓴 라파엘로와 흰옷을 입은 코페르니쿠스
때마침 회랑의 상단 아리스타코스가 서 있는 최 우측 기둥으로 두 젊은이가 막 들어와 계단 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엿보고 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소유자는 클레안테스를 헤집고 들어서면서 교활한 표정으로 고소한 웃음을 짓는다. 그자의 왼손은 회랑 아치형 외부로 빠져나갔다. 그 옆에는 곱상하게 생긴 인물이 아치 회랑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목전의 사태를 관망한다. 잠깐 살펴본 다음 곧 돌아갈 태세다. 이 두 인물은 조르조네가「세 철학자」에서 각인한 아리스타쿠스 모델을「아테네 학당」으로 옮긴 베네치아 출신의 중재자로 본다. 전자는 클레멘스 7세 교황의 국새 상서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Sebastiano del Piombo이고 후자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조수였던 조반니 다 우디네 Giovanni da Udine로 추정한다. 이 두 인물 사이에 불쑥 삐져나온 왼손은「아테네 학당」의 가장 큰 수수께끼다. 이 손은 라파엘로의 모자를 만지는 동시에 그의 머리를 아리스타코스 쪽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쑥 튀어 나온 손/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와 조반니 다 우디네
코페르니쿠스는 1500년 교황 클레멘스 6세의 부름으로 로마에서 강연하고 1년 동안 로마에 체류하였고, 1503년 페라라 대학에서 공법학박사를 획득한 다음 베네치아를 거치면서 귀국하였는데, 이때 라파엘로가 코페르니쿠스 초상화를 입수하여 작품에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필롤라오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대결하는 계단 바닥에는 한 기하학자가 꾸부정한 자세로 오른손으로 컴퍼스 잡고 증명에 열중하고 있다. 이자의 의복의 목 주변의 솔기에 시러큐스라는 황금빛 희랍어가 적힌 것으로 미루어 아르키메데스로 추정한다.
아르키메데스와 그의 제자들
회랑 좌측 계단에는 피타고라스가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며 자구 해석에 주목하는 동안 제자이자 아내인 노랑머리 테아노가 흑판을 갖다 대고 있다. 이들이 앉아있는 주변에는 잘목시스 Zalmoxis가 시중을 드는 가운데, 서 있는 자는 베끼는 자로 유명한 아퀴타스 Archytas가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다.
피타고라스와 테아노
직사각형 널빤지 상단은 흰색으로 6, 8, 9, 12의 수를 네 줄로 그려 피타고라스 음계를 도해하였다. 6, 8, 9, 12에 6과 8, 9와 12 사이에 완전 4도로 잡고, 6과 9, 8과 12 사이에 완전 5도를 잡은 뒤, 가장 위 8과 9 사이에 온음을 그린 것이다. 온음은 완전 5도에서 완전 4도를 뺀 음이다. 하단은 1, 2, 3, 4까지 수를 삼각형으로 쌓은 4수 체계가 그려져 있다. 4수 체계를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현의 길이 비율을 읽을 수 있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읽으면 진동 비율을 읽을 수 있다. 즉, 길이와 무게는 역비례한다. 1:2는 옥타브, 2:3은 완전 5도, 3:4는 완전 4도의 현의 비율, 거꾸로 4:3은 완전 4도, 3:2는 완전 5도, 2:1의 옥타브 진동 비율이다. 옥타브 체계는 완전 5도와 완전 4도를 더한 2:1이다. 단위는 온음을 쪼갠 9:8, 9:8, 256:243, 9:8, 9:8, 9:8, 256:243이다. 이는 피아노의 처음 순서의 2개의 흰 건반과 1개의 검은 건반 그리고 2개의 흰 건반과 1개의 검은 건반의 구성이다.
피아노 건반
피타고라스는 4수 체계를 6:8:9:12 비율로 확장하여 12현의 우주의 길이에 맞추었다. 행성과 별들의 우주 공간을 12구획으로 나누면 지구와 지구 중심에 곁 딸린 달은 1:1, 지구와 수성과의 거리 비율은 4:3, 금성과는 3:2, 태양까지는 2:1이다. 이는 완전 4도, 완전 5도, 옥타브 음정 사태를 나타낸다. 태양에서 화성까지는 8:3, 목성까지는 6:2, 토성까지는 4:1로, 각각 옥타브+4도, 옥타브+5도, 이중 옥타브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 전체의 길이를 마름질하면 달은 1, 수성은 1과 3분지 1. 금성은 1과 2분지 1이고, 태양은 다시 1이다. 태양에서 다시 화성까지는 1과 3분지 1, 목성은 1과 2분지 1, 토성 2의 비율에서 끝난다. 피타고라스는 지구에서 토성까지 2옥타브에 맞춘 음정 비율에서 하늘의 조화를 노래하였다.
라파엘로가 희랍 철학자들을 총출동시킨「아테네 학당」의 현장은 거의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거의 1세기 이후에 케플러가 그의 『우주의 비밀』의 독자 헌정사에서 한 줄로 피타고라스가 그러한 천구 음악을 창시하였다고 적어놓았다. 플라톤이 들고 있던『티마이오스』에서 흙 물 공기 불의 4원소설을 받아들이고 아르키메데스에서 정다면체가설을 발췌하여 우주의 건축을 해석하면 코페르니쿠스 태양 중심이론을 지지할 수 있다. 케플러는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과 금성 사이에 이십 면체, 금성과 지구 사이에 팔면체, 지구와 화성 사이에 십이 면체, 화성과 목성 사이에 사면체, 화성과 토성 사이에 육면체를 삽입하고 최외곽에 흙을 두른 다음에 속으로 불, 공기, 물을 다져 넣었다. 태양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고심한 결과였다.
케플러가 지구에서 토성까지 일직선 길이로 세워놓은 여섯 행성 운동의 면면을 살펴보니 이들은 태양에 가까이 왔을 때는 빨리 가다가 멀어질 때는 천천히 갔다. 케플러는 이들이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돌면서 돌아다닌 거리 면적만큼 간격을 맞추느라고 그런 줄 알고 이에 피타고라스 음정의 완급을 조절하였다. 그러한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천구 음악을 틀게 되었다. 태양계의 행성 운동을 피타고라스 음정 비율에 따라 청취한 음은 마음의 오성으로만 들을 수 있고 감각적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음이다. 케플러는 갈릴레이 아버지 빈센초 갈릴레이의 음악 이론을 수용하면서 자신이 제작한 천구 음악을 더욱 멋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은 소프라노의 음역, 수성과 지구는 알토의 음역, 화성과 목성은 테너의 음역, 그리고 토성은 베이스 음역에서 조화롭게 합창한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번개가 번쩍거린 뒤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진 다음에서야 빛의 본질을 생각하는 문화에 살아간다. 아무래도「아테네 학당」의 좀 느긋한 감상은 시간이 좀 지나야 음미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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