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가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고,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전자가 타당한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을 어길 수 없기 때문이고, 후자는 서양 중세 천년의 긴 역사에서 볼 수 있었듯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양자의 영역은 각각 철학과 신학에 속한다. 서로를 관통하는 힘에 대하여 과학은 E=mc2로 정량화하였고 인문학은 E를 Love라고 노래 불러왔다. 혹자는 이를 도라고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이 짙어지자, 히틀러는 그의 연인 에바와 결혼식을 올린 다음 동반자살 하였고, 1945년 7월 나치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자, 미 영 소는 7월 21일에서 8월 2일까지 포츠담에서 종전 협상을 개최하였다. 3명의 연합군 수장이 운집한 체칠리언호프 성에는 전후좌우 상하가 따로 정해진 바 없었다 한다. 즉, 미영소를 대표하는 자는 집합 장소에 하늘에서 내려오든 땅에서 솟구치던 어디에서 나타나든 상관없다. 그 만큼 막중한 장소라서 오직 극비의 회담 프로토클 만이 존재하였다. 독일은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합군의 독일의 분할 통치에 더 이상의 무력은 불필요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옥쇄한다는 각오로 진주만 폭격을 감행하고 미국 본토 공격까지 넘보고있었다. 루스벨트는 7월 16일 뉴멕시코에서 실시된 원폭 핵실험의 성공 사실을 극비에 붙이고 회담에 임하고 있었다.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드는 일제 군사력에 적절한 대응 수단을 신기술을 사용해보려는 구실이 되었다. 결국, 미국의 최고 명령권자는 단독으로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8월 9일에 ‘팻맨’이라는 원폭을 투하하라는 군사작전에 서명한다. 이 원폭의 명칭은, 요즈음의 의미에서 ‘꼬마’와 ‘뚱뚱이’로 부르는 편이 쉽다.
자연과학의 핵심역량이 총집결되었던 원폭의 위력으로 본토 자국민의 피해가 속출하자, 일본 황제 히로히토는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윤음을 선유한다. 녹음기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소리로 들린다. 이로써 36년간 식민지 상태의 한반도는 상해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 운동가들은 3.1운동을 계승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세우고, 소련과 중국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도 북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운다. 이 어수선한 긴가민가한 기간에 1950년 6월 25일 한국동란이 발발하였다. 남북한의 최고 군사 명령권자가 한국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힘이 없었음은 명약관화하였다. 분명한 점은 소련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아직까지 행사한다는 점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전 세계 16개국에서 모집한 유엔군을 한국전쟁에 파병을 결정하였고 대한민국을 지지하였다. 이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강원도 철원의 철의 삼각지대에서 유엔 참전용사들과 중공군이 대치하면서 수십 차례 탈환과 후퇴를 거듭하던 420 고지가 있다. 이 고지 탈환전에 참여하였던 그리스 병사들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스럽게 죽어 나간 동료들을 하로스라고 불렀다. 그렇게 생겨난 명칭이 아웃 포스트 해리라는 해리 고지다. 하로스의 어원은 샤론 χάρων charon이다. 단테의『신곡』에서 지옥으로 흐르는 아케론강에서 죽은 자를 나르는 뱃사공이 카론인데 샤론과 동일한 유래를 갖는다. 한국전쟁의 영웅적 전사의 죽음을 기념하는 장소의 명칭이 서양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고유명사의 의미 전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뱃사공은 금방 죽은 자는 지체 없이 아케론강에서 하계로 날라야 하지만, 산자를 지옥으로 들여보내는 힘을 행사할 수는 없다. 여기서, 버질과 함께 단테의 삼계 여행을 도운 여인이 있다. 곧, 단테가 9살에 만나 첫 순간에 사랑하여 평생토록 못 잊었던 베아트리체다. 그녀는 천당에 있다가 지옥의 림보에까지 내려와 또 다른 두 명의 성녀와 조력하여 단테의 지옥 입구의 통관을 돕는다. 인간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을 수 없고, 죽어보지도 않았는데 저승을 다녀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자가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살아있는 삶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신곡』은 1300년 부활절 성금요일에서 다음 목요일까지, 지옥과 연옥에서 각각 삼일 천국에서 하루를 보낸 총 일주일의 귀담아들을 만한 이탈리아 여행가이드이다.
프로이트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하계의 경계를 무의식 영역으로 지정하고 거기서 심층심리학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해리 고지는 삶과 죽음의 순간을 다투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인간 존재의 가장 실존적인 불안과 염려를 알려온 곳으로 우리의 역사 현장의 공간이다. 하이데거는 1920년대 후반에『존재와 시간』에서 인간 현존을 세계 내에 내동댕이쳐진 존재자로 평가한다. 그가 말한 던져지고 추락한 현존재라는 표현은 모던 세계의 집단 무의식의 본질 앞에서, 철학적 사유를 이끄는 언어의 파수대에 해당된다.
지옥의 원형 계단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나, 드롭 커피의 종이 필터처럼 위에서 밑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진다. 지옥에서 죄인은 하향할수록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다. 그래서 지옥의 가장 밑바닥은 천당의 반역 천사가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려오므로 지구의 남반구가 약간 튀어나오게 되었고, 그곳은 가장 사랑이 없는 가장 추운 얼음 빙판이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단테는 지구에서 천당까지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을 움직이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의 천동설 이론으로 자신을 감쌌다. 사랑이“해와 별들을 움직여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죄의 무게는 잴 수는 없지만, 한잔의 아메리카노 커피의 향기로 가늠하고 천당에 갈 수 없는 비기독교인의 죽은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어딘가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테네 학당」의 새로운 읽기 (2) | 2024.09.28 |
---|---|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사랑 (5) | 2024.09.27 |
마르크스의 감각과 계급 투쟁 (1) | 2024.09.20 |
루체른의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부고 (7) | 2024.09.20 |
두 미소와 미소 지각 (6) | 202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