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1929년 12월 30일 슐리크의 집에 참석하였다가, 울돌목같이 조류나 조석간만차가 극심한 “에우리포스 현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당혹감을 세계내존재의 불안으로 말한 하이데거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 자리에는 슐리크와 바이스만이 함께 있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이날 대화에서 하이데거의 ‘불안’과 ‘무(無)’에 대한 개념을 언급하며, 그것이 논리적으로는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인간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려는 윤리적 가치를 지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카르납은 물리학의 언어를 과학의 보편 언어로서 보면서, 세계내존재의 불안에 대해, 형이상학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당시 슈릭크, 카르납 등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을 “의미 없는 말장난”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며 씹고 있었다. 특히, 카르납은 하이데거의 “무(無)가 무화(無化)한다(Das Nichts nichtet”라는 문장을 논리적 오류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당시 하이데거는 1929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옮기면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로 취임 강연을 하였다. 그는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존재자들만 집착하고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전체 존재자가 뒤로 물러나면서 무가 전면으로 드러나므로 근원적인 불안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성에 주목했다. 왜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인지? 하이데거가 말한 무화는, 우리는 우리에게 존재의 신비를 일깨워 존재자들을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언어를 소중하게 붙들고 살아가라는 의미다.
당시 정황을 정리하면, 1929년 초 케임브리지로 돌아갔던 비트겐슈타인은 그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고향인 빈을 방문하여 슐리크의 집에서 슐리크, 바이스만과 함께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직접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바이스만이 비트겐슈타인의 발언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후에 『비트겐슈타인과 빈 학파』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하이데거가 '불안'과 '존재'에 대해 말하려는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언어의 벽을 들이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비록 과학은 아니지만,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열망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하이데거의 시도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느끼는 경이로움은 소중하고, 윤리적·신비적 열망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과학적 문장은 물리학 언어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물리학주의(Physicalism)’ 개념에 대해 화를 냈다. 그는 카르납이 『논고』에서 중요하게 여긴 ‘말할 수 없는 영역’을 거세하므로 ‘천박한 과학주의’로 변질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카르납이 “물리학적 언어”에 대한 “불안”과 “언어의 한계”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한 채 무단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카르납의 재탕으로 여겨지게 될” 우려 때문에 결국 빈 학파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모든 것을 과학적 논리로 환원하려던 빈 학단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태도가 묘한 ‘신비주의적’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었던 가장 논리적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반이성적 태도 때문이다. 그는 정작 빈 학단이 비웃던 하이데거의 ‘불안’은 인간 존재의 심층을 건드리는 것이라며 공감했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 과학인가?”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면서도, 그 말의 철학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이 지점이 과학적 합리주의를 신봉하던 카르납과 섞일 수 없었던 결정적 차이로서 그가 ‘전기’의 논리 중심에서 ‘후기’의 언어 게임 철학으로 넘어가는 분지점이다.
그런데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다루었던 세계내존재의 불안과 비트겐슈타인이 접근했던 불안 사이에는 미묘한 이격이 있다. 하이데거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아렌트와 빠졌던 사랑을 들키지 않고 세계내존재의 불안으로 뒤치다꺼리해야 했을 것이고, 비트겐슈타인은 다르게 될 까닭이 없는 경우의 총체의 세계가 일어나도록 걱정해야 했다. 적어도 하이데거는 원 철학자 탈레스가 밤하늘에 별을 보다가 우물에 빠졌고 하녀가 웃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소상한 사연을 문헌학적인 고증과 해석을 통해 빠삭하게 연구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사용한 ‘경우’라는 독일어 단어 ‘Fall’은 ‘떨어지다, 낙하, 추락. 등의 의미를 지니고, 탈레스가 우물에 빠지거나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의미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의 불안도, 탈레스가 우물 위에서 아래로 빠진 상황처럼, 현존재가 ’세계에 던져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1932년 8월 8일 슈릭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구절에 대한 오해와 오용을 언급한다. 『논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것은 ‘말하기’와 ‘보여주기’로 구분되고, ‘형식적 언어 형식(formal mode of speech)’과 ‘내용적 언어 형식(material mode of speaking)’으로 차별화된다.
『논고』가 달성한 위대한 철학적 업적의 하나는 명제의 논리적 구조에서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진리표(truth table)에 있다, 이는 구구단이 수의 곱셈 결과를 보여주는 것과 유사하게, 논리적 연결사(and, or, not 등)가 복합 명제의 진리값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즉, 진리표는 명제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 혹은 원자 명제의 가능한 모든 참/거짓 조합에 대해, 특정 명제, 혹은 복합 명제가 어떤 조건에서 참이 되고 어떤 조건에서 거짓이 되는 진리값을 제시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진리표는 명제의 논리적 형식 자체를 시각적 시시각각으로 표현하므로, 명제가 세계의 사실들과 맺는 관계, 즉 명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진리표는 특히 두 가지 특별한 유형의 명제, 모든 가능한 진리값의 조합에서 항상 참인 (예: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는다”) 항진 명제(Tautology)와 항상 거짓인 모순 명제 (Contradiction)를 식별한다. 항진 명제와 모순 명제는 세계에 대한 어떤 사실도 말해주지 않는데, 그들은 단지 논리 자체의 작동 방식, 즉, 언어의 논리적 한계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진리표는 명제의 진리 가능성의 구조를 “보여주므로” 언어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무엇을 유의미하게 “말할 수 있는지”를 규명하는 방법론이다. 이진법 구조로 진리표를 보면, 진리표는 00, 01, 10, 11이라는 4가지의 진리 결합 가능성은 제시한다. 진리표에서 ‘참/거짓’, ‘0/1’, ‘음/양’과 같은 이항 조합은 생물학적 공간의 4가지 가능성을 반영할 때에도 같은 일을 한다. 분자 생물학에서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우라실(U)이라는 4가지 염기에 대해 코돈은 3개씩 짝으로 총 64종류의 코드를 형성한다. 진리표는 논리적 가능성의 지도이고, 유전자 코드는 염기 서열이 단백질로 구현되는 설계도다.
진리표의 행렬(00, 01, 10, 11)은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형식 자체를 ‘보여주고’, 유전자 코드에서 4가지 염기 조합은 생명 현상의 근본적인 정보 구조를 ‘보여준다’. 두 시스템 모두 정보를 체계적으로 부호화하고 해독하는 ‘보여주기’의 구조를 공유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정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논리적 형식을 시시각각으로 드러내 준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사상이 21세기에 디지털 문명의 심층 연원을 밝히는 수리구조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상을 이진 구조는 (00, 01, 10, 11)이고 이는 각각 노음 소양 소음 노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혹자는 지난 세기를 뒤흔들었던 하이데거의 불안에 대해, 프로이트는 의미 없는 로고스를 심리분석에 소진하였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라며 이미 철학적 사유 현장을 떠났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20세기 후반은 그가 꺼낸 언어의 매트릭스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보았고, 프랑스 구조주의는 그가 한 말의 주름을 작품의 부재로 명시하기까지 하였다. 옛 이론의 현존재의 성공을 6.54 문장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전에 말하였던 것을 난센스라고 말하는 데 있었다면, 말은 액면 가치의 문제다. 『논고』를 단호하게 읽으면 언어에 관한 모든 진술은 의식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언어의 표현들에 대한 의미는, 언어가 어떻게 세계와 관련되고 언어-세계에서 어떤 논리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의미론에 있다. 이러한 의미론은 말하기보다는 보여주는 일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하고 싶었던 말할 수 없음이 의미론의 실천적 귀결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이다. 오스트리아 키르히베르크에서 열린 국제 비트겐슈타인 심포지엄에서 가톨릭 철학자이자 논리사가인 보헨스키가 철학은 인간 삶의 지평을 넓히는 본질적인 노동이라는 점을 역설한 강연을 하였다. 보헨스키는 강연 모두에 청중석에 앉아 있던 칼 포퍼를 향해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견제구를 던졌다.
“내 앞에 위대한 비판적 합리주의자인 칼 포퍼 경이 앉아 계시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곧바로 반박(falsification)당할까 봐 몹시 두렵다.”
그는 포퍼의 비판적 방법론을 치켜세우는 동시에, 자신의 논리가 공격받을 것에 대한 예방주사를 놓고, 철학자를 “묵묵히 밭을 가는 소”에 비유하며 철학의 길을 제시했다. 그는 철학은 화려한 수사나 유행이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향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이성의 길을 닦아나가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비트겐슈타인 학회 발표차 키르히베르크로 갔을 때 별도로 비트겐슈타인이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던 마을을 방문하여 그의 수업을 들었던 제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당시 빈에서 엄청난 갑부의 아들인 비트겐슈타인이 시골 학교에서 가르치고 합창을 지휘하며 노래도 가르쳤는데, 합창하는 초등학생들 가운데 어느 누군가 음정이 모자라거나 틀리면 신기하게도 찾아내서 혼냈다는 것이다. 당시 시골 학교 졸업생에게 비트겐슈타인 선생님은 어땠냐고 물으니, 한참 지난 일이지만, 그는 표정과 행동으로 알려 주었다. 선생님께서는 째려보고는 곧장 다가와서 찌르고 꼬집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의 이론 전통에서 형언(形言)할 길이 없는 의미의 세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규칙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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