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과 천동설의 최후

record9218 2025. 11.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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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페르니쿠스 시대 이전의 중력은 ‘지구와 우주는 같은 장소로 향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 견해를 따랐다. 그는 지구가 우주 중심이라는 천동설의 주창자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상의 무게 개념을 포기하고 우주 중심에서 지구를 빼내므로 천동설을 축출했다. 케플러는 달과 지구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그들의 고유 괘도에서, 서로에게, 중력에 따라, 이끌리는 물체로 서로 만나려 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84년 그리스 북부도시 스타지라에서 태어난 그리스 철학자다. 그의 어머니는 에우보이아 섬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고,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다. 그는 17세에 아테네로 유학하여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다가 플라톤이 사망하자, 37세에 아테네를 떠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크세노크라테스와 함께 소아시아 아소스 섬에서 그곳 통치자의 후원으로 해양 생물학을 연구했다. B. C. 340년 통치자가 암살당하자 레스보스섬으로 도피하여, 그의 조카딸 피티아스와 결혼하여 테오프라스토스와 함께 계속 해양 생물학 연구에 매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년 동안 가정교사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를 가르치다가 그가 왕위에 오르자 12년 만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는 아테네에서 리케이온 학원을 설립하고 학당 회랑을 거닐며 강의할 때, 만물 변화로서 물체는 모름지기 질료, 형상, 운동, 목적이라는 네 가지 원인을 따르고, 지상 세계는 생성소멸의 변화에 예속되지만, 천상 세계는 영원불변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에 바빌론에서 사망하자, 그는 테오프라스토스에게 리케이온을 맡기고 에우보이아 섬의 할키스로 떠났다.

 

     당시 그는 자신의 도피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반복하지 않고, 철학이 두 번 같은 죄를 짓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갖다 댔다. 그러나 기실은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사유지에서 말년에 사색과 성찰을 위한 안식처로 할키스 선택했을 것이라는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 그는 1년 후인 62세에 위장병으로 사망했는데, 죽기 전 아내 피티아스 옆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할키스 근처 묘지에 묻혔다. 디오게네스는 모든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실망한 나머지,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미나리 독초를 마시고 자살했다고 기술했다.

 

     에우보이아는 그리스 본토 사이의 간격이 좁은 곳은 40m에서 넓은 곳은 1.6km까지며 남북으로 180km 길게 뻗어있는 섬이다. 섬을 끼고 있는 에우리포스 해협에는 에게해에서 들어오는 두 갈래의 밀물 때문에 특이한 조류 현상이 일어난다. 섬 전체 해안의 남쪽에서 올라온 물과 동쪽 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날 때, 한 지류는 다른 지류에 비해 1시간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해협 양쪽에는 최대 40cm의 수위 차이가 발생한다. 만조 상태의 물의 흐름은 멈췄다가 수위 격차의 경계에서 남쪽에서 내려온 물은 북쪽으로 강하게 흐르면서 조류 변화를 일으킨다. 해협 양쪽 만조의 시간은 하루 6시간 13분마다 방향을 바꾸며, 시속 12km의 해류에는 배 운항이 불가능해진다. 불규칙한 일부 기간의 하루의 물의 흐름은 최대 14번이나 방향을 바뀌기도 하고, 어떤 날은 거의 멈추기도 한다. 남북 해수면 공간적 높이와 만조와 간조의 시차는 일반적인 조석 주기 외에 예외적인 급격한 방향 전환과 함께 매우 특이하고 복잡한 해양 현상을 자아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스보스섬의 특정한 국지적 조건을 연구한『기상학』에서, “에우리푸스” 현상은 에게해의 불규칙한 해류에 영향을 주는 바람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서 에우리포스 εὔριπος라는 단어는 ‘아주 강하게’, ‘쉽게’라는 부사 에우 εὖ와 강한 해풍이나 돌풍이 '던져진 것의 힘, 세게 휘두름, 돌진'이라는 리페 ριπή와 결합으로 조수 흐름과 역류가 격렬한 해협을 지칭하며, 어렵고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분규에 대한 사태로서 “에우리포스 현상”을 가리키는데 전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지중해의 에우리포스 해협의 밀물과 썰물은 달의 인력과 지구의 원심력으로 발생한다. 달은 지구와 마주 보는 쪽의 바닷물을 끌어당기고, 반대편은 원심력으로 바닷물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하루에 이 과정을 두 번 지구 자전으로 반복할 때, 에우리포스 해협의 바닷물은 달의 인력으로, 북쪽에서 내려온 물은 남쪽에서 밀물이 되고, 남쪽에서 올라온 물은 북쪽에서 썰물이 된다. 양 조류의 수위의 차이로 바닷물이 끌어 당겨지고 부풀어 오르면서, 해협의 할키스 항구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번갈아 반복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할키스 항구의 에우리포스 해협(픽사베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식도염이나 위장병으로 죽게 되었다는 자연사의 주장 이외에도 미나리 독초를 마시고 죽었다고 기술하므로, 소크라테스와 별다르지 않은 사인으로 치장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죽음을 달리 보는 방법도 있다. 에트나산(Etna)은 알프스산맥에서 남부 이탈리아로 이어진 시칠리아섬 동부 메시나와 카타니아 인근의 해발 3,350m 활화산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엠페도클레스가 실험을 위해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직접 들어가서 죽었다고 기록했다. 정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을 과학적 순교라고 기술하고 싶으면 엠페도클레스 정도의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 묘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가 실제로 조류의 원인을 바람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그를 과학적 성취를 위한 과학적 진리 순교자의 모습으로 그리기에는 불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조류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좌절감에 바다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중세 기독교 작가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유산이다. 2세기 저스틴 마터는 “로고스의 씨앗”이라는 로고스 스페르마티코스(Logos Spermatikos)라는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생전에 신적 진리의 "씨앗"을 담고 있었다고 보았다. 역사 속에서 작용하는 로고스의 현현이 “기독교의 씨앗”인데, 그것이 실제로 그리스도 성육신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철학자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긴 알았는데-, 무지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4세기 그레고리는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가 임종 시에 말했다는 “갈릴리 사람아, 네가 이겼도다 Vicisti, Galilaee”라는 구절을 기독교가 장차 국교가 되리라는 인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 다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교자의 적대감을 표현하였다. 비기독교 철학자들은 신성한 "로고스"를 받아서 진리에 대한 부분적 이해만 지니고 부분적으로만 진리를 성취했지만, 기독교는 완전하고 궁극적인 진리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우리포스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에우리포스가 철학자의 이해력을 도와주려고 하는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진 것으로 그렸다.

 

     17세기 초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을 번역한『명리탐』에서 프르타도와 이지조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최초 원인의 소이연(萬所以然之最初所以然)”이 조물주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인물로 그렸다. 아리스토텔레스, 즉, 아리사다특륵(亞利斯多特勒)은 밤마다 일곱 번씩 학문을 진척시키고(夜夜進退七次) 까닭을 궁구하고자 하여(亞利欲究其故), 늙고 병들어서도 게을리하지 않아서 심지어 머리털까지 잘라내어(且頭顱懇切) 정성을 다했다.

 

     케플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을 과학의 순교자나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했다고 보는 시각 대신, 그의 지식 부족의 한계를 수사학적 표현의 수면 위를 올렸다. 그는 어머니가 마녀재판으로 죽음의 문 앞에 서게 되자, 에우리포스 해협에서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면서 바다에 투신하였다는 과학자의 조용한 죽음을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대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이론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조류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았다. 그는『동물 운동론』에서, “어떤 것이 천체를 움직이면, 그것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하늘 일부일 필요가 없다. 그것이 움직이는 동안 하늘을 움직이면, 그것이 하늘에 있지 말아야 하나?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접하는 한 그를 움직여야 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데, 움직이는 자가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은 운동의 일부 일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군가 움직임의 힘으로, 중심으로부터, 지구의 정지상태를 극복하려고 하면, 그는 지구 중심에서 그것을 조져야 하지만, 지구가 무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힘이 출발하는 강도는 무한정하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아가,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보는 것과 달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에 따라 그것이 보일지라도, 하나는 필연적으로 볼 수 없고, 다른 하나는 우리로부터만 필연적으로 못 본다.”라고 하므로, 『천체론』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천상의 원운동의 제일원인과 연관시켰다. 중세의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아베로이스도 하늘의 정지상태에 대해, “만일 하늘이 정지상태에 이른다면, 우리는 불변의 상태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지각하지 않는 자가 변경을 지각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변을 전개하였지만, 천동설을 넘지 못했다.

 

     울돌목은 진도와 해남 사이 위치한 해협으로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명량해전 장소로도 잘 알려진 을돌목 조류 최대 유속이 시속 10~15km 이상이면 배 운항이 까다롭다. 좁은 해협과 복잡한 해저 지형과 더불어 조수간만의 차가 큰 보름달이 뜨는 시기는 유속이 더욱 빨라진다. 이순신 장군은 빠른 조류를 이용해 왜군의 배를 혼란에 빠뜨리고, 조석간만의 원인은 몰라도 조류를 이용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할키스 항구 언덕에서 조석간만의 원인을 알지 못해 에우리포스 해협으로 몸을 던지므로, 파도를 보다가 파도가 되어 에우리포스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케플러는 생전에 유언으로, 자신의 몸은 지구의 그림자에 드리워져 있지만, 자신의 영혼은 하늘에서 왔다고 묘비명에 적어놓게 하므로, 물질과 정신 사이의 간격을 해명하였다. 기독교 신앙이나 이순신의 정신은 물질이 아닌 정신적으로 기리는 대상이다. 물질문명의 유산으로 공자묘, 종묘, 명 13릉, 진시황릉, 자금성 후문의 천제단, 향교, 사당, 각종 배향 신주 등, 그리고 자연경관의 유산으로 장 가계, 보천대 협곡, 하서회랑, 칠채산, 등은 유명하지만, 그냥 관광차 보는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물질세계의 탐구나 자연경관의 구경을 위한 것이라면, 이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라는 전제에서야, 정신적 눈으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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