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티르너를 봐, 모두 평화로운 적! 지금은 맥주를 마시지만, 곧 피를 물처럼 마실 거야. 다른 사람이 ‘왕들을 타도하라!’라고 외치면 슈티르너는 즉시 ‘법률도 타도하라!’라고 덧붙인다.”
늙은 공산주의자 엥겔스가 1842년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 84번지 히펠 바인바를 방문했을 때 헤겔 좌파 모임을 연필로 스케치하면서 슈티르너에게 붙였던 운율이다. 헤겔주의자 대부 루게와 좌파의 수장 바우어가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슈티르너는 바우어 뒤에 섰고 우측 식탁 의자에 베를린 불도로 알려진 쾹켄이 시니컬 하게 앉아있다. 엥겔스가 50년이 지난 후에 「신앙의 승리」 시에서 슈티르너는 ‘위대한 친구’였다고 회상했을 때, 독일에서 헤겔 좌파는 이미 사라졌고, 신 칸트학파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었다. 엥겔스가 당시 슈티르너에 대하여 느꼈던 동정적 반응은 아마도 마르크스로부터 엄중한 질책을 받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높은 이마 때문에 친구들이 슈티르너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슈미트는 ‘원시 니체’라는 호칭에 걸맞게 무정부주의자, 허무주의자, 개인주의자로 평가된다. 슈티르너는 1806년 남부 독일 바이로이트의 루터파 가문의 악기 제작자의 아들로 베를린, 에를랑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문헌학을 공부했고, 1839년부터 베를린 여학교에서 정규직으로 예술과 과학, 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1841년 처음으로 급진주의자들의 아지트이자 헤겔 좌파의 본거지인 자유인 모임에서 바우어와 교분을 쌓고 평생 그와 동료로 지냈다. 당시의 혁명적 분위기는 삼위일체에 대해 논쟁하고, 천국으로 가는 길이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 말을 타고 가는 것이 더 안전한지,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것이 더 안전한지, 지옥이 오른쪽에 있는지에 대한 토론으로 넘쳐났다.
헤겔 좌파 모임은 헤겔의 절대 정신을 ‘관념’, ‘종-존재’, ‘자의식’이라는 인본주의 언어에서 자신들만의 특이한 기호로 갑론을박하는 논쟁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 ‘절대정신’, ‘세계정신’ 같은 용어는 인간의 자의식이 초월적으로 실현하려는 힘을 암묵적으로 기만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슈티르너는 좌파 모임에서 ‘절대’를 자의식으로 옮기고 “우리 무신론자들은 경건한 사람입니다.”라며 ‘천상의 폭풍’ 같은 존재로 등장하였다. 그는 이 일갈의 의미를 “오직 우리 내부의 너머만이 새 하늘이 되어 우리를 새 하늘 탑으로 부르신다!”라고 부연하였다. 슈티르너는 헤겔의 종교철학, 철학사, 정신 철학 강의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좌파 모임에서 발언권이 인정되었고 나름대로 헤겔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옮겼을 때 그에게 필적할만한 동료는 드물었다.
슈티르너는 포이어바흐와 바우어가 하나님을 인류로 대체하였지만 ‘높은 곳의 유일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내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무신론을 조롱하는 논리를 개발하였다. 그것은 ‘모든 것이 두려움 없이 허용된다’라는 변증법이다. 니체가 굳이 하나님의 사망을 선언하므로, 인간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권력을 탈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논증과 상통한다. 슈티르너는 법, 도덕, 사회와 국가는 사기꾼 같은 유령이기 때문에 중산층이 중산층의 이데올로기의 요소, 즉, 절반만 교육받은 소부르주아의 기회주의를 통하여 ‘무자비하게 팔꿈치를 사용하여 끝까지 경쟁할’ 것을 선동했다.
슈티르너는 포이어바하가 『기독교의 본질』에서 감정으로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을 인간과 동격으로 놓은 <하나님 인간> 개념을 비판한다. <하나님 인간>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고통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고,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이 아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고통은 환상에 불과하다. 신성과 인성의 성육신 결합은 기만과 환상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었고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인간이고 하나님이었다는 판단은 모순이다.
슈티르너는 1844년 자신을 학문적으로 처음 알린 『유일한 자와 그의 재산』에서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로 환원 불가능한 고유성을 지닌 재산이 있는 데, 그것은 신체와 신체적 기능을 소유한 자아라고 한다. 그의 자아는 그가 일찍이 말한 ‘우리 너머’에 있으며, 오늘날 프로이트 무의식의 슈퍼에고와 같이 기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슈티르너는 자아는 모두가 평등한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하는 환원 불가능한 비 개념적 특이성으로 이것임이라고 한다. 이 특이성이 자아 또는 고유성이 자신을 일인칭으로 만들고, ‘법률을 타도하라’라고 외칠 때 다들 ‘옳소’라고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부추긴다.
슈티르너는 인간 영역 내부에서 신성하고 신성한 것을 가리키는 방식으로 유일성을 <하나님 인간>에서 특성화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비판적 본능과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는 고정 관념에 빠져 살아간다. 대표적으로 인간을 종류로 분류하면, 인간은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자아를 개념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도덕성, 합법성, 기독교 등, 국가 자체에 대한 고정 관념은 인간이 갖는 독단적 가정을 무의식적으로 종속시키는 관념이다.
슈티르너는 고정 관념을 벗어나 살아가기 위해, 나는 규범도, 법도, 모델도 독특한 것에 대한 올바른 행동 기준도 없는 나의 종을 발견한다. 나라는 자는 나를 일인칭으로 세상에 있는 것을 나에게 있는 그대로 나의 소유물로 여긴다. 소유물 개념은 내 것만을 골라내므로, 나는 내 소유물에 내 힘이 미치도록 한다. 나는 내 재산의 개념을 관념에 적용하면 어떠한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내가 매 순간 그것을 죽음의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생각은 아무런 걱정 없이 언제나 내 것이다. 당신의 생각도 나의 생각이며, 내가 당신을 원하는 대로 그것을 처분하고 무자비하게 무너뜨리면, 그것은 내 재산이며, 내가 원하는 대로 소멸시킨다. 나는 당신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슈트르너는 '나'라는 관념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고무줄 늘어나듯이 종횡으로 늘였다고 줄이면서 기고만장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 이래 헤겔 이후 헤겔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관념을 발바닥으로 밟는 것, 곧, 관념적 이상론을 유물론으로 뒤집으려고 전력 질주하며 작업하던 중인데, 슈티르너라는 예리한 이기주의자를 만나서 고심한다. 마르크스는 유물 변증법적으로 물질을 일차적이고, 의식, 사고, 감각을 이차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슈티르너가 곧장 반대 방향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말하는 사유재산에 대하여서도 특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내용이었다.
마르크스는 슈티르너 이기주의는 자신의 주장하는 자아의 독단적 신념과 원칙을 합리적 조사에 면역이 되도록 논증을 구사하기 때문에, 비이성적 편견을 합리적인 기준으로 제거하는 비판의 비판을 가한다. 신념이나 원칙이 독단적으로 유지될 때, 과학이 제공하는 모든 비판 수단이 금지되고 철회되어 비판받을 수 없다면 항소 가능성이 없는 비판은 권위에 무조건 노예다. 마르크스는 슈티르너가 헤겔 변증법의 진정한 후계자일 수도 있는 가운데, 모든 믿음이 원칙적으로 수정되거나 포기될 수 있다는 비판의 오류 가능성을 내세우고 슈티르너가 사용하는 비 개념적 현실과 특권적 관계에 놓인 반박할 수 없는 중심 개념의 관념에 대한 '비판에 의한 수색의 칼'을 갖다 댄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멘토였던 바우어의 철학적 방법인 비판을 수용하면서『독불연보』에 인쇄된 루게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을 촉구한다. ‘무자비한 비판’은 비판이 도달하는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권력과의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르크스는 슈티르너의 ‘고유’와 ‘재산’이라는 핵심 개념이 도리어 그가 비판하는 고정 관념이라고 비판한다. 슈티르너의 중심 개념인 ‘고유’는 개념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확실한 내용을 소유하지 않는 ‘빈 용어’다. 고유함은 오히려 비 개념적 특이점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의 중심 위치다. ‘고유성’과 ‘소유성’이 고정 관념이라면 그것은 본성을 위장한 고정 관념이다. 여기서 슈티르너가 독단주의에 빠져 있다고 결론 내린다. 슈티르너가 <하나님 인간>에 적용한 유일성은 내부적으로 모순개념일 뿐만 아니라, 이 개념의 사용은 잘못된 가정에 기인한다. 유일성은 단어이면서도 단어가 아니므로 개념 외적 현실과의 특권적 관계에 놓여 있어서 비판에 면역이 되어 있으므로 뒤집기를 해야 한다. 부침개는 뒤집어야 노릇노릇해지면서 잘 익는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서문에서 헤겔 좌파의 ‘자의식’, ‘종’ 또는 ‘자아’는 고립된 관점이라고 보고, 좌파 헤겔주의자들의 반대 의견을 “이 양들이 스스로 늑대로 여기고 늑대로 여겨지는 것을 폭로하고, 그들의 울부짖음이 중산층의 개념을 모방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마르크스는 슈티르너의 ‘고유성’과 ‘소유성’의 개념은 나름대로 ‘기존 조건의 장식, 비참함으로 인해 비참해진 불쌍하고 무력한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연고’라고 결론을 내렸다. 개념을 유물론적으로 물질적 연고로 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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