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렌, 후크, 핼리는 1684년 1월 왕립학회 회의가 끝난 후 커피숍에서 모였다. 이들이 모인 위치는 템스강을 낀 버킹엄 궁정 우측과 세인트 폴 대성당 사이에 위치하는 그레시안 커피하우스가 아닌가 한다. 렌은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지은 건축가이자 런던 그레셤 대학교수였고, 후크 역시 같은 대학의 기하학 교수이고 핼리는 나중에 옥스퍼드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교수가 되기 전에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천문대를 건설하고 1682년 혜성을 관측하였던 천문학자다. 세 사람의 화두는 태양을 중심으로 각 행성이 휩쓸고 다니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의 경로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행성은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밝혀놓았던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다, 핼리는 행성들이 태양에 끌려다니는 인력은 양자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로 감소한다고 제안했다. 후크는 그 원리에 따르게 된다면, 모든 천체 운동 법칙을 증명할 수 있다고 단언하였고 렌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동의했다. 이들이 이러한 화두를 떠올린 배경은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손가락 끈에 무거운 물체를 매달아 돌리면서 발생하는 원심력에 대한 공식을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에 있었다. 하위헌스가 말한 원심력을 모든 천체 운동의 원형 궤도에 충족이 되도록 적용하려면, 각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의 제곱으로 역 비례하고,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휩쓸 때, 태양을 향한 인력이 직접 작용하고 있다는 조건, 즉, 중심력이 주어질 때만 자동으로 충족되리라는 것을 눈여겨보기는 어렵지 않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건축한 렌은 가만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역 제곱의 인력으로 행성 궤도 모양을 유도해낸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세 사람 모두 만유인력을 증명하는 수학적 수단을 발견했다고 말할 자격이 되는지가 문제였다. 후크는 이미 필요한 증거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공개해야 할 때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당장은 비밀로 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후크는 그 경로가 타원이라는 증명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증명한 적은 없었다.
봄은 곧 여름으로 바뀌었지만 아무런 결과도 없자, 핼리는 마침내 7개월 후인 1684년 8월 케임브리지로 가는 마차에 올라 트리니티 칼리지의 뉴턴을 방문하였다. 그는 런던에서 딱 한 번 뉴턴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이 그를 반문하기가 난감해서 케임브리지에 도착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뉴턴은 놀랍게도 그의 방문에 기뻐했다. 핼리는 큰 안도감에 찾아온 이유를 밝히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마침내 ‘행성들이 태양에 의한 인력으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가정할 때 어떤 종류의 곡선이 묘사될까요?’라고 물었다. 뉴턴은 주저하지 않고 타원일 거라고 대답했다. 궁금한 핼리는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뉴턴이 “제가 계산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핼리가 계산 결과를 보여달라고 하자, 뉴턴은 서류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핼리가 서면 증거 없이 떠나자 뉴턴은 다시 계산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3개월이 지나자 뉴턴은 이전과는 다른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타원 궤도 문제를 해결했다. 그것이 1684년 11월에 「회전물체 운동에 대하여, De Motu Corporum in Gyrum」이라는 9페이지 분량의 논문이다.
핼리는 뉴턴의 사본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그는 역학에서 운동과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수학적 답안지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순간도 망설임이 없이 곧장 케임브리지로 향해 달려갔다. 뉴턴이 논문을 왕립학회에 제출하여 모든 과학계가 볼 수 있도록 출판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핼리는 12월 10일 왕립학회 새 회장인 새뮤얼 페피스와 회원들 앞에서 뉴턴을 방문한 근황을 알리고 「회전물체 운동에 대하여」의 논문 결과를 설명하는 연설을 했다. 핼리의 보고는 회의록에 정식으로 기록되었고 왕립학회는 뉴턴에게 가능한 한 빨리 논문을 출판할 것을 권고하였다. 뉴턴의 창조적 추진력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18개월의 노동 끝에 마침내 1686년 4월 과학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혹은 『프린키피아, Principia』가 완성되었다. 뉴턴은 우주의 공허 속으로 중력을 던짐으로써 물리학과 천문학을 통합하는 단일 과학을 완성한 것이다. 핼리가 출판비를 대었고 작품에 송부까지 보태서 뉴턴의 업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면서 칭송했다.
당시 케임브리지 도서관에는 물리학의 최신 교재로 데카르트의 물리학 저술이 꽂혀있던 가운데,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고 지금도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책이 출판된 후 어느 날 뉴턴이 길거리에서 한 학생을 마주쳤는데, 그 학생이 “그 사람이나 다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이 간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태연하게 걸어갔다고 한다.
우리가 천자문에서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을 외며 뉴턴의 우주를 바라볼 때, 보이는 것은 끝없이 광활한 컴컴한 허공뿐이다. 『프린키피아』는 우주는 무한하며 바닥이 없는 공허의 심연을 움직이는 물질적 신체로 채워진다고 한다. 우주의 모든 운동은 기계적 법칙으로 축소된 거대한 기계와 같으며, 인간과 인간의 감각 세계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주는 전혀 감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조화롭고 합리적인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뉴턴은 수학 법칙, 다른 말로는 미적분계산법을 통하여 각 입자를 다른 모든 입자에 묶어 무질서와 혼돈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였다. 뉴턴은 우주의 거대한 수수께끼인 중력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밝히지 못했다. 뉴턴 자신인지, 하나님인지, 아니면 그 어떤 무엇인지, 나중에 어물어물 넘어갔다. 라이프니츠는 중력 자체를 부정하였고 그러한 힘은 숨어있다고 보았지만, 어찌하였든 뉴턴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가 여전히 힘을 숨기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죽었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 공산주의자 엥겔스의 「신앙의 승리」 (3) | 2024.12.02 |
---|---|
신앙인과 하나님의 계시 (0) | 2024.11.11 |
히스테리와 무의식의 기원 (7) | 2024.11.04 |
헤겔 좌파의 수장 바우어와 세금 징수 (7) | 2024.11.02 |
프라하 카를 대교의 육각형 눈송이와 독일 울름의 밀랍 논증 (5) | 2024.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