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라하 카를 대교의 육각형 눈송이와 독일 울름의 밀랍 논증

record9218 2024. 10. 2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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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눈 덮힌 카를 대교

   1609년 연말에 신성로마제국 황실 수학자 케플러가 프라하의 카를 대교를 걸었다. 때마침 눈이 내려 시가지를 온통 흰색으로 바꾸고 있었다. 외투에 떨어진 눈송이를 보니 곧장 녹아서 물로 변하였다. 눈송이의 크기도 형태도 다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모습은 마치 별과 같았다.

   이 시기에 케플러는 행성 운동에 대한 1, 2 법칙을 발견한 직후였다. 그가 천체의 구조에서 눈을 별처럼 바라보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가 발견한 행성 운동 1 법칙이란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수성과 금성과 지구, 그리고 지구 바깥으로 화성, 목성, 토성은 태양 둘레를 타원궤도로 돈다는 진술이고, 2 법칙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각 행성의 운동은 일정한 면적비율로 그들의 타원궤도를 휩쓸고 다닌다는 진술이다.

   케플러는 평소에 자신을 도와준 바커 폰 바겐펠스 남작에게 눈송이를 선물하리라 마음먹었다. 루돌프 황제가 자신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봉 지급을 게을리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지만 남작이 여러모로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는 또한 갈릴레이가 여름 망원경으로 달과 목성을 관찰한 결과를별들의 메신저라는 팜플렛으로 출간하였을 때 가장 먼저 자신에게 알렸다. 그는 평소에 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던 천문학 애호가였다. 눈송이는 습기에서 열이 빠져나가고 추위가 스며들면서 육각 결정체를 형성하지만, 떨어지자마자 녹으면 곧 없어져 물로 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말로 눈송이는 무 와 같아서 천문학자에게 어울리는 재화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눈송이를 들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몸에서 나오는 온기 때문에 카를 대교를 몇 발자국 못 가서 녹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쓴 에세이가 현대 빙하학과 X 레이 결정학의 선구적 작품인선물 혹은 육각 눈송이이다.

   관찰해보니 눈송이는 육각기둥의 봉을 펼치며 위풍당당하게 내려왔다. 케플러는 시편 14216-7절에서 다윗이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라며 칭송한 구절을 연상하였다. 그는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도다에서, 왜 자신이 우주에 여섯 행성이 존재하는지에 질문에 대한 해답을 눈송이가 여섯 날개의 깃털을 달고 땅으로 내려오는 이유에서 보았다고 여겼다. 실제로 케플러는 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여섯 행성이 나란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지를 최초로 밝혔다. 여기서 달을 더하면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일주일이 생겨난다. 인간이 일주일을 떠나지 못한다는 점을 보면, 케플러가 왜 그렇게 육각형 눈송이를 들여다보며 하나님 디자인의 섭리를 말하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눈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턱대고 내리지 않고 하나하나 잇따른 간격에 일정 비율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눈의 낙하비율은 자연에서 사과나 석류, , 장미꽃, 해바라기 씨앗, 콩깍지 같은 식물뿐만 아니라 가리비, 전복 등이 거주하는 광물에도 숨어있다. 곧 피보나치 수열이다. , 눈송이는 0, 1, 3, 5, 8, 13, 21,... 등의 수열로 떨어진다. 이 비율은 전복이나 가리비 껍데기에서 이들이 형성하는 패턴에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케플러는 무엇보다 별들이 육각형 평면에 여섯 기둥의 벽을 세워 만든 벌집의 건축 구조가 눈송이의 육각형 형성 패턴에 유비 관계로 성립한다고 추론한다. 벌집과 눈송이 건축 구조를 살펴보면 자연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여 설계한 기하학적 작품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에게 비를 내려주시며 그러한 조짐을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161911월 남부 독일 울름 근처의 한 병영 막사에서 23세의 병사가 따스한 난로 곁의 침대에 누어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세 번이나 꿈을 꾸면서 비몽사몽 중에 본 에스트 엣 논 est et non’이라는 라틴어 글귀에서 있고 없음이라는 뜻을 곱씹었다. 그는 주변에서 구한 밀랍 조각에서 여전히 가시지 않은 꽃향기와 꿀맛을 음미하면서 색깔, 형태, 크기를 헤아렸다. 이 병사가 18년 후에 이날 밤을 회상하면서방법서설성찰을 쓴 데카르트였다.

   데카르트가 벌이 만든 밀랍을 보기로 방을 두드려가면서 소리를 듣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보다 벌집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설계를 관찰하려는데 있었다. 그가 명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내려준 눈과 비가 별집으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케플러의 생각에서 힌트를 찾은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백산 전투에서 약탈당한 루돌프 2세 황제의 장서들을 접했을 것이고 이 가운데 케플러의 저작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이때 노획한 황실 도서관의 수많은 책을 왕실에서 관리하기 위해 노데를 부르면서 데카르트도 초청하였다. 네덜란드에서 떠돌던 데카르트는 그녀의 초청을 수락하여 스톡홀름으로 갔다.

   데카르트는 그가 듣고 생각하는 동안에 벌집은 열이 가해져 녹아 없어져 버렸을 때, 벌집은 감각 영역에서 사라졌지만, 오성은 신체와 더불어 밀랍 조각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데카르트는 밀랍 논증에서 처음으로 몸과 마음 사이의 관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인간 존재의 의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사유의 토대에서 눈과 밀랍의 객관적 외부 세계의 실재를 인정하고 신 존재증명까지 전개하였다. 당시 우트레히트 신학자 철학자들은  꿀맛을 느끼는 인간 의식과 꿀을 만들게 한 벌들의 활동 사이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겠다는 발상자체가 가톨릭 신앙에 위해를 가져온다고 간주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방식을 비판하였다.

   데카르트는 가톨릭 군주와 황제의 편에서 프라하의 백산 전투 참전 이후 1633세계론을 출간하려다가 태양 중심설을 지지하다가 종교 재판에 걸린 갈릴레이 사건을 듣고 출간을 단념하였다. 이 때문에 파스칼은 데카르트를 비겁한 자로 몰았다. 흥미로운 사실로서, 백산 전투에서 패배한 개신교 군주 프리드리히 겨울 왕의 백작 비가 엘리자베스다. 데카르트는 암스테르담에서 망명 중인 그녀와 56통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자신의 주저철학의 원칙을 그녀에게 헌정하였다. 엘리자베스의 딸 하노버의 소피 선제후비와 그녀의 딸 베를린의 샤를로테 선제후비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마니아였다. ,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딸과 손녀딸까지 모두 3명의 귀족 부인이 근대 철학의 합리론을 완성한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따르는 철학 애호가였다.

   케플러는 영국 수학자 헤리옷이 군함에 가능한 최소 면적의 최대밀집 쌓기를 할 수 있는 대포알의 적재 방법을 물어오자, 이에 관한 수학적 추측을 내어놓았다. 눈이 공간으로 들어올 때 육각형을 취하고, 콩알이 깍지를 가득 밀고 들어오거나, 석류 알이 껍질에서 터져 나올 때, 같은 알갱이들은 용기 안에서 서로서로 삼각형을 형성하도록 힘을 작용하게 구르거나, 외부 힘에 마름모꼴로 밀리거나 한다. 일반적으로 한 평면에서 동등한 알갱이들은 3차원 공간에서의 밀집 모임은 삼각형이거나 사각형의 피라미드형을 따른다. 케플러 추측이라 부르는 이 쌓기 문제의 가설은 지난 세기 초에 힐베르트가 인류가 해결할 23가지 난제의 하나로 선정한 뒤에 20세기말에서야 해일즈에 의하여 해결되었고, 최근에 우크라이나 출신의 37세의 마리나 비아조브스카가 8차원으로 확장한 해법을 제시하여 필드 상을 받았다.

   근대 사유는 이와 같은 사유와 연장으로 세계를 만들어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택배기사는 짐칸에 물량을 차곡차곡 적재하고 과일 상도 과일을 잘 쌓아 올리려고 고심한다. 병원에 가서 찍어보는 X 레이도 육각형 결정체 모델을 따른다. 그 점에서 케플러와 데카르트가 씨름한 육각형 눈송이, 벌집의 문제는 각각 과학과 철학에서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생생한 물음이고 답변이다. 하나님 또한 계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 코기토 에르고 줌이라고,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있다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존재 증명에 도달한다고 본 철학자가 데카르트다. 30년 전쟁 발발 직전 추운 겨울 울름 근처에서 신적인 계시를 경험한 데카르트가 혹한의 겨울을 기억하며 전하는 글이 있다. 일어나시오. 지난밤 내내 눈이 내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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